한눈에 보기
• 2025년 9월 기준 유니코드에는 172개의 문자 체계와 159,801개의 문자가 등록되어 있습니다. 이 많은 문자는 크게 ‘모음을 어떻게 적는가’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
• 그리스·라틴 알파벳은 자음과 모음을 모두 낱글자로 적고, 아랍 문자는 짧은 모음을 보통 생략하며, 데바나가리와 에티오피아 문자는 자음 글자에 모음이 붙어 있고, 일본 가나는 음절 하나를 글자 하나로 적습니다.
• 한글은 1443년 28자로 만들어져 1446년 해설서와 함께 공개되었고, 자음은 발음기관의 모양을, 모음은 하늘·땅·사람을 본떴습니다. 오늘 쓰는 기본 자모는 24자입니다.

1. 문자는 몇 가지인가, 그리고 왜 나누어 보는가

세계의 문자 수를 세는 가장 실용적인 기준은 컴퓨터가 쓰는 국제 표준 유니코드입니다. 유니코드 컨소시엄은 2025년 9월 9일 17.0 버전을 공개하며 새 문자 4,803개를 추가해 총 159,801개의 문자를 등록했고, 문자 체계(스크립트)의 수는 172개가 되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번에 새로 들어간 네 문자 체계는 중앙아프리카 자가와 공동체가 쓰는 현대 문자 베리아 에르페, 인도 북동부 쿠루크 공동체의 톨롱 시키, 베트남 북부 타이 요 공동체의 전통 문자, 그리고 고대 아나톨리아에서 쓰인 시데 문자입니다. 문자는 박물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만들어지고 표준에 등록되는 살아 있는 도구입니다.

172개를 한 줄로 늘어놓으면 외울 수 없지만, 소리를 적는 방식으로 묶으면 몇 갈래로 정리됩니다. 자음과 모음을 각각 낱글자로 적는 알파벳, 자음만 적고 모음은 대체로 생략하는 아브자드, 자음 글자 자체에 기본 모음이 들어 있고 다른 모음은 부호로 바꾸는 아부기다, 음절 하나를 글자 하나로 적는 음절문자, 그리고 뜻을 가진 단위를 글자로 삼는 표어문자입니다. 이 분류는 문자의 ‘좋고 나쁨’이 아니라, 각 언어의 소리 구조에 맞춰 사람들이 선택한 서로 다른 해법을 보여줍니다.

2. 알파벳의 탄생: 수백 개의 기호를 스무 개 남짓으로

펜실베이니아대학교 박물관의 설명에 따르면 알파벳은 이집트 상형문자에서 영감을 받은 페니키아인의 선조인 가나안 사람들이 이르면 기원전 1800년경에 발명했으며, 최근 시리아 움 엘마라에서 발견된 점토 명패는 기원전 2400~2300년까지 연대가 올라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알파벳의 핵심 이점은 수였습니다. 쐐기문자나 상형문자의 수백 개 기호 대신 “알파벳 문자의 학습자는 스무 개에서 서른 개의 글자만 배우면” 되었습니다.

같은 자료는 가장 오래된 그리스 알파벳 명문이 페니키아 선박이 지중해를 오가던 기원전 700년대의 것이며, 오늘 영어와 여러 언어에 쓰이는 라틴 알파벳이 그리스 알파벳에서 발전했다고 설명합니다. 페니키아 문자가 자음만 적는 체계였고 그리스인이 일부 글자를 모음 표기에 재배정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설명이지만, 이 글이 확인한 박물관 자료는 그 세부 과정까지 다루지 않으므로 여기서는 결과만 적습니다. 그리스와 라틴 알파벳은 자음과 모음을 모두 낱글자로 적는 체계가 되었고, 그 방식이 오늘 세계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문자 유형이 되었습니다.

세계 여러 문자를 쓰는 데 쓰인 붓과 갈대 펜, 깃펜과 철필 같은 필기 도구를 설명하기 위한 AI 재현 이미지
AI로 재현한 일러스트 · 실제 사진 아님 — 세계 여러 문자를 쓰는 데 쓰인 붓·갈대 펜·깃펜·철필 같은 필기 도구를 설명하기 위한 개념 이미지

3. 아브자드: 아랍 문자는 왜 모음을 생략하는가

아랍 문자는 자음 중심 문자, 곧 아브자드의 대표 사례입니다. W3C 국제화 활동에 참여하는 리처드 이시다의 아랍 문자 정서법 노트는 아랍 문자를 “짧은 모음이 보통 적히지 않는” 아브자드로 설명합니다. 기본 자음 글자는 28개이고, 글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가로로 쓰지만 숫자와 끼워 넣은 라틴 문자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어 한 줄 안에서 방향이 섞입니다. 글자는 늘 이어 쓰는 필기체이며 앞뒤에 무엇이 오는지에 따라 모양이 바뀝니다.

모음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긴 모음은 알리프·와우·야라는 세 글자가 모음 역할을 겸해 표시하고, 짧은 모음은 글자 위아래에 붙는 작은 부호(하라카트)로 적을 수 있습니다. 다만 이 부호는 “쿠란 본문, 사전, 교육 자료, 발음을 분명히 해야 하는 곳”에서만 쓰이고 일상 인쇄물에서는 대부분 생략됩니다. 읽는 사람이 언어를 알기에 자음 뼈대만으로 단어를 알아보는 구조입니다. 같은 문자가 페르시아어와 우르두어, 여러 아프리카 언어에도 각 언어의 소리에 맞게 글자를 더해 쓰이고 있어, 문자와 언어가 일대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4. 아부기다: 자음 글자 안에 모음이 들어 있다

인도의 데바나가리를 비롯한 남아시아 문자들은 유니코드 기술 노트가 “아부기다 또는 알파실러버리”라고 부르는 유형입니다. 이 노트에 따르면 이 유형에서는 “자음 글자가 자음+모음 음절을 나타내며”, 자음에는 기본으로 딸린 모음(내재 모음)이 있어 다른 모음 소리가 필요하면 그것을 덧씌워야 합니다. 내재 모음의 실제 발음은 문자마다 달라 /ə/, /ʌ/, /ɔ/ 같은 예가 있습니다. 내재 모음이 아닌 모음을 적을 때는 산스크리트어로 마트라라 부르는 모음 부호를 자음의 왼쪽·오른쪽·위·아래에, 때로는 여러 방향에 동시에 붙이고, 모음 없이 자음만 발음해야 할 때는 유니코드에서 비라마라 부르는 작은 부호로 내재 모음을 ‘죽입니다’. 자음이 연달아 올 때는 글자 모양을 바꾸거나 합치는데, 데바나가리 결합자의 60%에서는 내재 모음 소리와 역사적으로 연결된 세로 획이 사라지는 반쪽 글자 형태가 쓰입니다. 노트는 이 문자들이 모두 브라흐미라는 공통 조상에서 갈라져 나왔다고 설명합니다.

아프리카에는 다른 아부기다가 있습니다. 유니코드 표준 핵심 규격은 에티오피아 문자를 “자음과 모음의 조합을 2차원 행렬로 제시하는” 전통을 가진 문자로 설명하며, 인코딩도 그 구조를 따라 43개 자음과 8개 모음을 교차한 344개의 개념적 음절로 짜여 있다고 적습니다. 이 문자의 이름이 된 게에즈어는 지금은 예배 언어로만 남았지만, 문자 자체는 암하라어·티그레어·오로모어 등 동아프리카 여러 언어에 채택되어 쓰이고 있습니다. 같은 문서는 아프리카에서 근대에 새로 만들어진 문자들도 기록합니다. 서아프리카 만덴 계열 언어를 적기 위해 1949년 만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는 응코 문자, 1830년대에 만들어져 1962년 표준 음절표가 나온 라이베리아·시에라리온의 바이 음절문자, 1896~1910년 사이 카메룬 서부에서 만들어진 바뭄 음절문자가 그 예입니다.

필사자가 두루마리와 잉크를 앞에 두고 작업하는 책상을 설명하기 위한 AI 재현 이미지
AI로 재현한 일러스트 · 실제 사진 아님 — 필사자가 두루마리와 잉크를 앞에 두고 작업하는 책상을 설명하기 위한 개념 이미지

5. 음절문자와 표어문자가 함께 쓰이는 일본어

일본어는 한 문장 안에서 세 종류의 문자를 함께 씁니다. 뜻을 가진 단위를 적는 한자, 그리고 음절 하나를 글자 하나로 적는 두 종류의 가나(히라가나·가타카나)입니다. 한자는 얼마나 알아야 할까요. 일본 문화청은 2010년(헤이세이 22년) 내각 고시로 개정한 ‘상용한자표’에 2,136자를 실었고, 이 표의 성격을 “일반 사회생활에서 한자 사용의 기준(目安)”이라고 설명합니다. 즉 상용한자는 법으로 강제하는 한자의 전부가 아니라, 공문서와 신문 같은 일반 생활에서 이 정도면 통한다고 정한 기준선입니다.

가나는 각각 46자의 기본 글자로 일본어의 음절을 적는다고 널리 소개되며, 히라가나는 조사와 어미 같은 문법 요소에, 가타카나는 외래어 표기 등에 주로 쓰입니다. 하나의 언어가 표어문자와 음절문자를 역할을 나누어 함께 쓰는 이 구조는, 문자 유형이 언어마다 하나씩 배정되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조합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6. 한글: 소리 내는 기관을 본뜬 문자

한글은 알파벳처럼 자음과 모음을 낱글자로 적지만, 글자를 만든 원리와 기록이 남아 있다는 점에서 세계 문자사에서 특별한 위치에 있습니다.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은 세종이 1443년(세종 25)에 28개의 문자를 만들고, 1446년 9월 『훈민정음』, 일명 해례본을 펴냈다고 기록합니다. 국립한글박물관의 상설전시 ‘훈민정음, 천년의 문자 계획’은 그 28자가 자음 17자와 모음 11자로 이루어졌으며, 기본 자음은 발음기관의 모양을 본뜨고 모음은 하늘·땅·사람의 원리에서 끌어냈다고 설명합니다. 유네스코는 이 해례본을 1997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면서, 1446년 음력 9월에 간행된 이 책이 세종이 1443년에 완성한 문자를 반포한 문서이며 집현전 학자들의 해설과 예시를 담고 있다고 소개합니다. 원본은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오늘 쓰는 한글은 28자가 아닙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자모’ 항목에 따르면 한국어 어문 규범은 현재 한글의 기본 자모를 자음 14자, 모음 10자, 모두 24자로 정하고 있습니다. 15세기의 후설 저모음을 적던 아래아(ㆍ), 성문 파열음의 여린히읗(ㆆ), 연구개 비음의 옛이응(ㆁ), 치경 마찰음의 반치음(ㅿ)은 소리가 사라지거나 다른 글자에 합쳐지면서 쓰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문자는 만들어진 뒤에도 그 언어의 소리 변화를 따라 바뀝니다. 한글의 24자는 그 변화의 결과입니다.

금속 활자를 주조하고 배열하는 인쇄 공방을 설명하기 위한 AI 재현 이미지
AI로 재현한 일러스트 · 실제 사진 아님 — 금속 활자를 주조하고 배열하는 인쇄 공방을 설명하기 위한 개념 이미지

7. 문자와 언어는 다른 것이다

이 글의 사례들이 반복해서 보여주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문자와 언어는 별개라는 것입니다. 아랍 문자는 아랍어뿐 아니라 페르시아어와 우르두어를 적고, 에티오피아 문자는 게에즈어가 예배 언어로 물러난 뒤에도 암하라어와 오로모어를 적습니다. 반대로 한 언어가 여러 문자를 쓰는 일본어의 예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나라의 문자”라는 말은 늘 조심스럽게 써야 합니다. 문자는 언어의 소리를 담는 그릇이고, 그릇은 빌려 쓰고 고쳐 쓰고 새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그릇은 지금도 만들어집니다. 1949년의 응코, 1830년대의 바이, 20세기 초의 바뭄, 그리고 2025년 유니코드에 새로 등록된 베리아 에르페와 톨롱 시키는 모두 공동체가 자기 언어를 적기 위해 근현대에 만든 문자들입니다. 문자를 ‘오래된 것일수록 정통’으로 보는 시선은 이 살아 있는 역사와 맞지 않습니다. 한글이 1443년이라는 제작 연도와 제작 원리를 기록으로 가진 것처럼, 새 문자들도 각자의 이유와 설계를 가지고 태어나 표준에 오릅니다.

8. 낯선 문자를 만났을 때 기억할 세 가지

첫째, 글자 수로 문자의 난이도나 우열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아랍 문자는 28자지만 모음 생략과 이어 쓰기 규칙을 익혀야 하고, 데바나가리는 부호 결합 규칙이 핵심이며, 한자는 상용 2,136자라는 기준선이 있습니다. 각 문자는 자기 언어에 맞게 복잡함을 다른 자리에 배치했을 뿐입니다.

둘째, 문자 이름과 언어 이름을 구분합니다. ‘아랍 문자로 쓴 우르두어’, ‘에티오피아 문자로 쓴 암하라어’처럼 말하면 오해가 줄어듭니다. 디지털 텍스트의 인코딩과 글꼴이 언어가 아니라 문자 체계 단위로 구별되어 처리되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셋째, 표준을 확인합니다. 어떤 문자가 유니코드에 등록되어 있는지, 어느 문자 체계에 속하는지는 유니코드 컨소시엄의 공개 자료로 확인할 수 있고, 각 나라의 문자 규범(한국의 어문 규범, 일본의 상용한자표)은 해당 정부 기관이 공개합니다. 소리를 적는 방식은 네 가지 남짓이지만, 그 방식을 골라 쓴 사람들의 역사는 172개 문자 체계 하나하나에 다르게 새겨져 있습니다.

출처 및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