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답

노리개는 조선시대 여성이 옷에 달았던 장신구다. 구성은 다섯 부분으로 적혀 있다. 띠돈과 끈, 주체가 되는 패물, 매듭, 술이다. 주체 패물을 한 개 단 것은 단작노리개다. 세 개를 한 벌로 단 것은 삼작노리개다. 사전 기록을 모아 보면 삼작노리개가 더 격식 높은 자리에 쓰인 형태로 볼 수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학중앙연구원)의 노리개 항목은 이 물건을 이렇게 정의한다. “노리개는 저고리고름이나 치마허리에 차는 부녀자들의 장신구이다.” 정의 안에 몸의 두 지점이 함께 적혀 있다. 저고리의 고름과 치마의 허리다. 노리개가 옷의 어느 부분에 매달리는 물건인지가 재료보다 먼저 적혀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같은 항목은 조선시대 여성의 장신구에서 목걸이나 귀걸이가 쇠퇴하고 대신 노리개가 다양하게 발달했다고 적는다. 한글 이름의 근거도 남아 있다. 『한국민속대백과사전』(국립민속박물관)은 『숙명신한첩淑明宸翰帖』의 ‘노리개옛’이라는 기록을 들어 노리개라는 한글이 일찍부터 사용된 것을 알 수 있다고 설명한다. 영어판 위키백과 노리개 문서는 이 말이 본래 ‘예쁘고 재미있는 물건’이나 ‘좋아하는 장신구’를 뜻했다고 적는다.

다루는 범위는 네 가지다. 신라 요패에서 비롯했다는 기원설, 장식물마다 붙은 상징, 매듭과 술의 기법, 그리고 실물 소장 기록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 적은 노리개의 다섯 부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노리개 항목은 구성 요소를 한 줄로 나열한다. “노리개는 띠돈(帶金) · 끈(多繪) 및 주체가 되는 패물(三作 또는 單作) · 매듭(每緝) · 술(流蘇) 등으로 구성된다.” 이 한 줄에 다섯 개의 이름이 들어 있다. 끈과 매듭과 술에는 각각 다회와 매집과 유소라는 한자 이름이 함께 붙어 있다. 부품마다 고유한 한자 이름이 있었다는 사실을 이 한 줄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같은 목록은 패물 뒤에 삼작 또는 단작을 괄호로 적어 둔다. 주체 패물의 개수가 처음부터 구성의 일부로 다뤄졌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영어판 위키백과 노리개 문서는 셈을 다르게 한다. 그 문서는 노리개가 주체 장식과 정교한 매듭, 그리고 맨 아래의 술이라는 세 기본 부분으로 구성된다고 적는다. 다섯으로 세는 설명과 셋으로 세는 설명이 함께 존재한다.

끈의 생김새는 더 구체적으로 적혀 있다. 『한국민속대백과사전』은 노리개의 끈을 이렇게 설명한다. “끈은 여러 갈래의 견사를 엮어 짠 끈목인 ‘다회多繪’에 매듭[每楫]을 맺고 술을 늘인 형태가 일반적이다.” 끈 하나가 매듭과 술을 함께 끌고 간다는 설명이다. 여러 갈래의 견사를 엮어 짠다는 대목은 끈 자체가 직조물이라는 점을 알려 준다.

띠돈의 쓰임은 처음부터 여성 장신구가 아니었다. 같은 사전은 대전이 주로 남자의 허리끈에 달아 장도와 부채 같은 장식물을 거는 데 사용하던 것이라고 적는다. 그리고 조선 말기에 여성의 노리개를 거는 데에도 대전이 활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인다. 다섯 부분 가운데 하나는 뒤늦게 합류한 부품으로 볼 수 있다.

저고리 고름에 늘어진 노리개을 설명하기 위한 AI 재현 이미지
AI로 재현한 일러스트 · 실제 사진 아님 — 저고리 고름에 늘어진 노리개을 설명하기 위한 개념 이미지

단작과 삼작, 그리고 『정미가례시일기』의 이름들

주체 패물의 개수는 이름을 바꾼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노리개 항목은 주체가 되는 패물을 한 개 또는 세 개 단다고 적는다. 그리고 한 개로 된 노리개는 단작 또는 외줄노리개, 세 개가 한 벌로 된 노리개는 삼작노리개라 하였다고 설명한다. 『한국민속대백과사전』은 쓰는 자리까지 함께 적는다. 그 사전은 주체의 개수에 따라 단작과 삼작으로 구분하며, 평상시에는 단작을 차고 경사 시에는 삼작을 찼다고 설명한다.

삼작노리개의 이름은 다시 둘로 갈린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삼작노리개 항목은 세 개가 형태는 다를지라도 재료가 같을 때 금삼작·은삼작·옥삼작·비취삼작·자마노삼작·밀화삼작 등으로 불렀다고 적는다. 반대로 세 개의 재료가 다르더라도 형태가 같은 경우는 호로병삼작·투호삼작·박쥐삼작·동자삼작 등으로 부르기도 하였다고 적는다. 이름이 재료와 형태 가운데 통일된 쪽을 따라간다는 규칙으로 읽을 수 있다. 한 벌 안에서 무엇이 같은지가 이름에 드러난다.

이름을 붙이는 방식이 늘 같았던 것은 아니다. 『한국민속대백과사전』은 왕실의 혼례 물목을 다룬 문헌을 들어 이렇게 적는다. “왕실의 혼례 물목을 적은 『정미가례시일기丁未嘉禮時日記』(1847)의 기록을 보면 노리개나 패라는 단어는 보이지 않는다.” 같은 사전은 그 기록이 재료와 형태를 들어 ‘수정쌍가지’처럼 이름을 붙였다고 설명한다. 물목에 적힌 이름과 오늘 쓰는 분류 이름이 같지 않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신라 요패와 『고려도경』의 금방울

기원을 말하는 문장은 조심스럽게 적혀 있다. 『한국민속대백과사전』은 이렇게 적는다. “통상적으로 허리띠에 여러 가지 장식을 달아 착용하던 신라의 요패腰佩가 노리개의 기원으로 여겨지고 있다.” 문장 끝에 ‘여겨지고 있다’는 말이 붙어 있다. 단정이 아니라 통설의 소개로 볼 수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설명도 추측형이다. 그 항목은 신라 때 요대에 달던 요패나 고려 때 포에 매던 허리띠에 금방울 또는 향료를 넣은 금낭을 차던 풍습이 조선시대에 이르러 고름이나 치마허리에 차는 노리개로 전환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고 적는다. 영어판 위키백과 노리개 문서는 노리개의 진정한 원형이 신라 시대에 착용한 허리 장식으로 보인다고 적는다. 세 문헌이 가리키는 대상은 같고 표현의 강도만 다르다.

『한국민속대백과사전』은 고려의 기록도 함께 든다. 그 사전은 『고려도경高麗圖經』에도 여성들이 허리에 채색 끈의 금방울과 비단으로 만든 향낭을 차던 풍습이 기록되어 있다고 적는다. 세 시대의 기록을 항목별로 나란히 놓으면 차이가 보인다. 신라는 요대에 달던 요패다. 고려는 포에 매던 허리띠에 금방울이나 금낭을 차는 방식이다. 조선은 고름이나 치마허리에 차는 노리개다. 달던 자리가 허리에서 저고리 고름으로 옮겨 간 점이 세 기록의 차이로 정리된다.

명주실 끈을 매듭짓는 손을 설명하기 위한 AI 재현 이미지
AI로 재현한 일러스트 · 실제 사진 아님 — 명주실 끈을 매듭짓는 손을 설명하기 위한 개념 이미지

호랑이 발톱과 옥나비 한 쌍의 상징

삼작노리개의 조합에는 규칙이 적혀 있다. 『한국민속대백과사전』은 삼작노리개가 주체의 형태나 재료에 공통성이 있도록 조합된 것이라고 적는다. 같은 설명은 삼작이 ‘천天·지地·인人’을 상징하기도 한다고 덧붙인다. 세 개라는 숫자 자체에 뜻을 붙인 설명이다.

장식물마다 붙은 뜻도 목록으로 남아 있다. 같은 사전은 이렇게 적는다. “용맹함의 상징으로 악귀를 쫓는 호랑이 발톱, 액을 담아 쫓는 투호投壺, 사악함을 쫓고 경사를 부르는 방울, 삼재三災를 쫓는 괴불 등이 액을 막는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박쥐와 매미는 오복五福과 오덕五德의 상징이었다.” 앞의 네 가지는 막는 쪽이다. 뒤의 두 가지는 바라는 쪽이다. 한 벌 안에 막는 뜻과 바라는 뜻이 함께 들어갔다고 볼 수 있다.

옥나비 한 쌍은 자리까지 지정된다. 『한국민속대백과사전』은 옥나비 한 쌍이 중심에 오도록 차며, 옥나비 한 쌍이 부부의 사랑과 다산을 의미한다고 적는다. 영어판 위키백과 노리개 문서는 주체 장식의 모티프를 동물과 식물, 일상 기물, 문자, 종교적 상징의 다섯 갈래로 나눈다. 투호와 방울은 일상 기물에 가깝고, 호랑이 발톱과 매미는 동물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두 설명을 겹쳐 읽으면 뜻과 소재가 각각 다른 기준으로 정리돼 있음을 알 수 있다.

도래매듭부터 낙지발술까지의 기법

매듭은 장식의 일부로 설명된다. 『한국민속대백과사전』은 이렇게 적는다. “매듭은 주체가 더 아름답게 돋보이도록 하는 장식으로, 노리개에는 주로 도래매듭, 생쪽매듭, 나비매듭, 국화매듭, 장고매듭, 병아리매듭 등이 사용되었다.” 한 문장에 여섯 가지 이름이 들어 있다. 매듭의 역할이 주체를 돋보이게 하는 데 있다고 적혀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술에도 이름이 있다. 같은 사전은 노리개 끝부분에 달리는 장식 술을 유소라 하며, 만들어진 방법에 따라 봉술과 딸기술과 낙지발술이 있다고 적는다. 분류의 기준이 모양이 아니라 만드는 방법이라는 점이 함께 적혀 있다. 술을 보면 제작 공정이 드러난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주체를 꾸미는 기법도 따로 나열된다. 같은 사전은 장식기법으로 금속에 금을 입힌 니사장식, 옥을 투각해 무늬를 넣은 섭옥장식, 법랑이나 비취 장식 등이 있다고 적는다. 영어판 위키백과 노리개 문서는 크기의 조합을 설명한다. 그 문서는 주체 장식이 크면 작은 매듭과 어울리고, 주체 장식이 작으면 큰 매듭이 따라온다고 적는다. 매듭의 크기가 주체의 크기에 맞춰 조절됐다는 설명으로 읽을 수 있다.

진열장 속 노리개 세 벌을 설명하기 위한 AI 재현 이미지
AI로 재현한 일러스트 · 실제 사진 아님 — 진열장 속 노리개 세 벌을 설명하기 위한 개념 이미지

「궁중발기」의 대삼작과 삼천주 노리개

삼작노리개는 등급으로 나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삼작노리개 항목은 금과 은, 옥석, 보패의 진귀함과 크기·규모에 따라서 대삼작노리개와 중삼작노리개와 소삼작노리개로 구분된다고 적는다. 같은 항목은 대삼작노리개가 가장 호화롭고 큰 것으로 주로 궁중에서 사용되었다고 한다고 적는다. 그리고 중삼작노리개는 궁중이나 상류계급에서 패용하였으며, 소삼작노리개는 젊은 부녀나 어린이들이 패용하였다고 덧붙인다.

궁중 안에서도 자격이 갈렸다. 『한국민속대백과사전』은 이렇게 적는다. “궁중에서도 삼작노리개를 찰 수 있는 사람은 왕비와 왕세자빈, 정일품 내명부, 공주·옹주와 종친 부녀, 높은 품계의 외명부뿐이었다.” 명단이 품계 단위로 구체적이다. 같은 사전은 「궁중발기」에 ‘대삼작, 중삼작, 소삼작, 소소삼작’ 등의 다양한 삼작노리개와 단작노리개가 기록되어 있다고 적는다. 그리고 대례복에는 대삼작, 당의 차림의 소례복에는 중삼작, 일상복에는 소삼작노리개를 찼다고 한다고 설명한다.

가장 좁은 자격이 적힌 대목도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노리개 항목은 이렇게 적는다. “왕비만이 찰 수 있었다는 삼천주(三千珠) 노리개는 불교 에서 말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天世界) 를 상징하는 것으로, 아주 큰 진주를 셋씩 꿰었다고 한다.” 진주를 셋씩 꿰었다는 형태 설명과 삼천대천세계라는 뜻풀이가 한 문장에 함께 들어 있다. 여기서도 ‘한다’라는 전언 표현이 쓰였다.

범위를 넓게 적은 기록도 있다. 영어판 위키백과 노리개 문서는 조선에서 왕비부터 평민까지 여러 계층의 여성이 모두 노리개를 착용했다고 적는다. 같은 문서는 조선의 왕 연산군이 노리개의 호화로움과 크기로 자기 여인들의 신분 서열을 구분했다고도 적는다. 대삼작의 주체 장식에 대해서는 『한국민속대백과사전』의 설명이 있다. 그 사전은 궁중의 예식이나 일반인의 혼례와 같은 큰 행사에 착용하는 것을 대삼작노리개라 하며, 주체장식이 산호와 옥나비 한 쌍, 무늬가 새겨진 밀화인 경우가 많다고 적는다.

『사절복색자장요람』의 계절 기록과 국립민속박물관 소장품

계절에 따른 패용 기록도 남아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노리개 항목은 이렇게 적는다. “또 철에 따라 오월 단오 부터는 백옥 · 비취로 된 외줄노리개를, 팔월 추석 부터는 삼작노리개를 찼다고 한다.” 기준이 달과 명절로 적혀 있다. 단오와 추석이 바뀌는 시점이다. 단작과 삼작의 구분이 계절과도 연결돼 기록됐다고 볼 수 있다.

다른 항목은 다른 문헌을 든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삼작노리개 항목은 『사절복색자장요람(四節服色自藏要覽)』에 의하면 가을에는 옥이나 구슬로 만든 삼작노리개를 찼다고 적는다. 같은 항목은 겨울에는 자마노와 밀화 등의 삼작노리개를 패용하였다고 적는다. 두 기록 모두 계절과 재료를 함께 적었다는 점이 공통된다.

실물 기록도 확인할 수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노리개 항목은 한 점의 노리개를 이렇게 적는다. “산호, 밀화덩이, 옥나비 한쌍으로 된 3개의 노리개에 청, 홍, 황 3색의 술을 달았는데 주로 궁중에서 사용하였다.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주체 세 가지와 술 세 색이 한 문장에 함께 적혀 있다. 옥나비 한 쌍이 들어간 점은 대삼작노리개의 주체 장식 설명과 겹친다.

원문을 직접 읽고 싶은 독자가 찾아갈 곳은 두 곳이다. 하나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운영하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다. 다른 하나는 국립민속박물관이 운영하는 『한국민속대백과사전』이다. 두 데이터베이스에서 노리개와 삼작노리개 항목을 찾으면 이 글에 옮긴 문장을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함께 읽기: 조선의 갓은 어떻게 제도가 되었는가: 법전·실록과 갓일의 세 장인 · 온돌은 정말 세계 표준이 됐을까: ISO 11855의 실제 경과와 바닥 난방·히트펌프 효율 점검

정리

노리개의 뼈대는 다섯 부분이다. 띠돈과 끈, 주체가 되는 패물, 매듭, 술이다. 주체 패물의 개수가 단작과 삼작을 가른다. 『한국민속대백과사전』은 평상시에는 단작을 차고 경사 시에는 삼작을 찼다고 적는다. 그리고 궁중에서 삼작노리개를 찰 수 있는 사람을 왕비와 왕세자빈, 정일품 내명부, 공주·옹주와 종친 부녀, 높은 품계의 외명부로 한정해 적는다. 세 개를 한 벌로 다는 형태가 가장 격식 높은 자리에 놓였다고 볼 수 있다.

기원에 대한 설명은 모두 조심스럽다. 신라의 요패가 노리개의 기원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문장, 조선시대에 이르러 노리개로 전환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는 문장, 진정한 원형이 신라 시대의 허리 장식으로 보인다는 문장이 각각 남아 있다. 장식물의 뜻과 매듭과 술의 이름은 목록으로 비교적 또렷하게 적혀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기록처럼 실물과 연결되는 대목도 있다. 그 밖의 연대나 계보는 이 기록들만으로는 확인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