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답
한지(韓紙)는 닥나무 껍질 섬유를 물에 풀고 발로 떠서 만든 종이다. 질긴 까닭은 재료와 뜨는 방식, 후공정에 나뉘어 적혀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한국민속대백과사전은 닥나무 껍질의 섬유가 길고 결합 강도가 강하다고 적는다. 영어 위키백과 'Korean paper' 항목은 전통 한지가 외발(we bal) 방식으로 여러 겹을 떠서 섬유 결이 여러 방향으로 놓인다고 적는다. 마른 종이를 두드리는 도침(다듬이질)은 밀도를 높이고 표면을 매끄럽게 하는 공정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름도 재료에서 왔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지' 항목은 이렇게 적는다. "오늘날 닥나무 껍질로 만든 전래의 종이를 모두 한지로 통칭되고 있으나 중국 등지에서는 시대에 따라 계림지(鷄林紙) · 고려지 또는 조선지라 하였다." 같은 종이를 부르는 이름이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달랐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국가유산청 자료는 "‘한지장(韓紙匠)’이란 전통한지를 제작하는 장인을 말한다"라고 적는다.
다루는 범위는 섬유의 성질, 한지장 공정, 창호 쓰임, 고려지라는 이름, 일본 와시(和紙)와 중국 선지(宣紙)와의 차이다. 근거 자료에 없는 수치와 연대는 쓰지 않았다. 국립민속박물관 한국민속대백과사전이 일본 종이를 적을 때 쓰는 이름은 화지(和紙)다. 이 글에서는 같은 종이를 와시로 부른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과 닥나무 껍질의 섬유
국립민속박물관 한국민속대백과사전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종이를 이렇게 적는다.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종이는 1966년 경주 불국사 석가탑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이다." 발견 연도와 장소가 함께 적혀 있어 확인이 쉽다. 이 종이가 어떤 공정으로 만들어졌는지는 이 구절에 적혀 있지 않다.
같은 사전은 재료의 성질을 이렇게 적는다. "닥나무 껍질은 섬유의 길이가 길고 결합 강도가 강해 질긴 종이를 만들 수 있다." 두 조건이 한 문장에 함께 적혀 있어, 질김의 설명이 재료 단계에서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영어 위키백과 'Korean paper' 항목은 한지가 한국에 자생하는 닥나무의 내피로 만들어진다고 적는다. 같은 항목은 일반 종이가 pH 4~5.5의 산성이며, 산성도가 높으면 100년 안에 완전히 분해된다고 적는다. 한지의 산성도를 적은 수치는 근거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그래서 한지가 산성 종이보다 오래 남는다는 비교는 이 자료만으로 단정할 수 없다.
여기 인용한 구절은 누구나 직접 찾아 읽을 수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국립민속박물관 한국민속대백과사전,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이 해당 항목을 공개한다. 일본 종이에 관한 구절은 일본어 위키백과 '和紙' 항목에서 확인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 적은 닥 삶기와 백지라는 이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지장' 항목은 첫 손질을 이렇게 적는다. "먼저 질 좋은 닥나무를 깨끗이 겉껍질을 벗겨 건조시킨 다음, 한번에 40㎏ 정도를 물에 담가 깨끗이 세척한 후 약 1m씩 자른다." 다루는 무게와 자르는 길이가 숫자로 적혀 있다. 같은 항목은 "그리고는 가마솥에 붓고 잿물을 끓여 닥을 넣고 3∼4시간 정도 충분히 익을 때까지 삶는다"라고 이어 적는다.
같은 사전의 '한지' 항목은 삶기를 조금 다르게 적는다. "백피를 물에 담가 부풀게 한다음 물, 석회, 목회를 넣어 가마솥에 4시간쯤 삶아 지방질과 목질을 제거한다." 지방질과 목질을 덜어낸다는 목적이 분명히 적혀 있다. 두 항목의 서술은 삶는 시간과 넣는 재료에서 서로 다르다. 어느 쪽이 표준인지는 근거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국가유산청 자료는 공정의 수를 이름으로 바꿔 적는다. "닥나무를 베고, 찌고, 삶고, 말리고, 벗기고, 다시 삶고, 두들기고, 고르게 섞고, 뜨고, 말리는 아흔아홉 번의 손질을 거친 후 마지막 사람이 백번째로 만진다 하여 옛사람들은 한지를 '백지(百紙)'라 부르기도 하였다." 손질의 횟수를 이름에 담은 표현으로 볼 수 있다. 한 문장에 공정의 순서가 나열되어 있어 전체 흐름을 가늠할 수 있다. 베기에서 말리기까지 손이 여러 번 닿는다는 점이 이름으로 남았다.
발틀 위의 앞물질과 외발 방식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지장' 항목은 뜨는 동작을 이렇게 적는다. "그리고 나서 분산된 닥섬유를 발틀 위에 발을 얹어 놓고 앞으로 물을 떠서 뒤로 흘린다. 이 작업을 ‘앞물질’이라 한다." 물을 떠서 그대로 두지 않고 뒤로 흘린다는 점이 핵심이다. 흘리는 동작이 섬유를 한 겹씩 쌓는 과정으로 읽힌다.
같은 항목은 "뜬 종이 두 장을 엇갈려 붙인 후, 끈(베개)을 놓고 계속 반복하여 하루 종일 300여장을 떠서 붙인다"라고 적는다. 두 장을 엇갈려 붙인다는 서술은 겹치는 방향이 하나가 아니라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영어 위키백과 'Korean paper' 항목도 전통 한지가 외발 방식으로 여러 겹을 떠서 섬유 결이 여러 방향으로 놓인다고 적는다. 서로 다른 두 자료가 겹쳐 뜨는 방식을 함께 적고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한국민속대백과사전은 지통의 배합을 숫자로 적는다. "닥과 물의 혼합비율은 약 2:8이고, 닥과 닥풀의 비율은 2:3이나 2:4이다." 닥풀이 들어간다는 사실이 비율과 함께 적혀 있다. 국가유산청 자료는 "한지는 닥나무와 황촉규(黃蜀葵)를 주재료 하여 고도의 숙련된 기술과 장인의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완성된다"라고 적는다. 황촉규가 공정에서 어떤 구실을 하는지는 이 자료에 적혀 있지 않다. 닥풀과 황촉규의 관계도 근거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도침이 종이에 하는 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지장' 항목은 마무리를 이렇게 적는다. "건조된 종이를 선별하여 등급을 정한 뒤 필요에 따라 도침(다듬이질)을 한다." 모든 종이에 도침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한다고 적혀 있다. 등급을 먼저 정한다는 순서도 함께 적혀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한국민속대백과사전은 "도침은 종이의 밀도를 높이고 표면을 매끄럽게 하는 전통적인 종이 가공 기술이다"라고 적는다. 영어 위키백과 'Korean paper' 항목은 도침을 완성된 종이를 두드려 섬유를 다지고 먹 번짐을 줄이는 방법으로 적는다. 두 자료를 합치면 도침의 목적이 밀도, 표면, 먹 번짐 세 가지로 정리된다. 섬유를 다지는 공정이 종이를 쓰는 단계와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
재료를 얇게 다듬고 다시 손질해 성질을 바꾸는 방식은 다른 전통 공예에서도 보인다. 두 공예의 공정을 같은 것으로 묶어 설명한 서술은 근거 자료에 없다. 여기서는 손질을 여러 번 반복한다는 점만 견주었다.
창호에 바른 한지와 전주산 종이
영어 위키백과 'Korean paper' 항목은 한지가 통기성과 단열성을 함께 가진다고 적는다. 같은 항목은 한국에서 전통적으로 나무 문에 한지를 발랐다고 적는다. 여름에는 시원해지고 겨울에는 따뜻해진다는 설명이 함께 붙어 있다. 종이의 성질과 창호의 쓰임이 한 대목에 함께 적혀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지장' 항목은 "특히, 전주산 종이는 전국적으로 매우 우수하기로 이름이 나 있다"라고 적는다. 지역 이름이 종이의 평가와 함께 적힌 대목이다. 왜 전주 종이가 그런 평가를 받았는지는 이 구절에 적혀 있지 않다. 물이나 닥의 조건을 따로 적은 서술도 근거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그런 자리에 쓰려면 얇아도 쉽게 찢어지지 않아야 한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창호 쓰임과 섬유 길이를 직접 연결한 서술은 근거 자료에 없다. 두 사실은 각각 다른 자료에 따로 적혀 있다.
와시와 선지, 그리고 담징의 610년 기록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지' 항목은 610년(영양왕 32) 고구려 승려 담징(曇徵)이 일본으로 종이 기술을 전수한 기록을 적는다. 일본어 위키백과 '和紙' 항목은 중국에서 일본으로 제지 기술이 전해진 때를 스이코 천황 18년, 곧 610년으로 적고 고구려를 경유했다고 전한다. 두 자료가 같은 해를 적고 있다. 기술이 오간 경로를 더 자세히 적은 서술은 근거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뜨는 방식의 이름도 나라마다 다르다. 국립민속박물관 한국민속대백과사전은 "전통 방식의 종이 뜨기는 흘림뜨기이며 가둠뜨기는 일본에서 유입된 방식이다"라고 적는다. 일본어 위키백과 '和紙' 항목은 805~809년 다이도 연간에 관립 제지공장 가미야인이 설치되면서 일본 고유의 제지법인 나가시즈키 기술이 확립됐다고 적는다. 같은 항목은 나가시즈키가 동아시아에서 발달한 방식이지만 일본식과 중국식의 방법이 서로 다르다고 적는다. 이름이 비슷해도 동작이 같다고 보기는 어렵다.
원료를 적은 대목도 서로 다르다. 일본어 위키백과 '和紙' 항목은 와시의 원료로 삼, 닥나무(고조), 미쓰마타, 간피 등을 적는다. 같은 항목은 와시가 서양지에 비해 섬유가 월등히 길어 얇아도 강인하고 수명이 비교적 길다고 설명된다고 적는다. 또 중국 안후이성 선지 산지가 짧은 볏짚 섬유를 70%까지 배합해 종이를 뜨고, 점제로 황촉규가 아닌 양도등을 쓴다고 적는다. 한지 자료는 황촉규를 주재료로 적지만 그것을 점제로 적지는 않는다. 그래서 세 종이의 점제를 나란히 견주기는 어렵다.
세 종이를 항목별로 나란히 두면 기록의 범위가 분명해진다. 주재료와 뜨는 방식, 섬유에 대한 설명, 점제를 자료에 적힌 선에서만 옮겼다. 아래 표가 그 정리다. 일본어 위키백과 '和紙' 항목은 와시 원료인 닥나무(고조) 생산량이 1965년 3170톤에서 2019년 36톤으로 급감했다고 적는다. 재료를 구하는 사정도 나라마다 다르게 기록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고려지라는 이름과 조지서의 지장 81명
국가유산청 자료는 중국에서 불린 이름을 적는다. "우리나라의 한지는 고려시대부터 그 명성이 높아 중국인들도 제일 좋은 종이를 '고려지(高麗紙)'라 불렀다." 같은 자료는 송나라 손목(孫穆)이 『계림유사(鷄林類事)』에서 고려의 닥종이가 빛이 희고 윤이 난다고 극찬했다고 적는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지장' 항목은 고려시대 종이를 송나라 소동파(蘇東坡)도 칭찬했다고 적는다. 평가를 적은 기록이 여러 자료에 남아 있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수요 쪽 기록도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지' 항목은 고려시대에 목판 인쇄술과 금속활자 인쇄술이 발전하면서 한지 수요가 급증했다고 적는다. 영어 위키백과 'Korean paper' 항목은 1377년 한지에 인쇄된 『직지』를 금속활자로 찍은 현존 최고의 책으로 적는다. 종이와 인쇄에 관한 서술이 같은 시기 기록에 함께 등장한다.
조선 시대에는 관청이 종이를 맡았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조지소가 1415년(태종 15)에 설치되고 1466년(세조 12)에 조지서로 고쳐졌다고 적는다. 국립민속박물관 한국민속대백과사전은 조지서에 지장 81명, 목장 2명, 염장 8명, 선상노 95명, 도침군 60명을 두었다고 적는다. 같은 사전은 『경국대전』에 따라 외공장이 221개 지역에 지장 692명을 두었다고 적는다. 도침군이 따로 적혀 있다는 점은 도침이 별도의 일로 다뤄졌음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15~16세기에 닥나무가 부족해 쑥대와 밀, 보릿짚, 대껍질 등을 혼용지료로 썼다고 적는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한지장이 2005년 국가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로 지정되었다고 적고, 국가유산청 자료는 지정일을 2005년 9월 23일로 기재한다. 영어 위키백과 'Korean paper' 항목은 2009년 기준으로 운영 중인 한지 공방이 26곳이며 작가와 서예가, 보존가 등에게 공급한다고 적는다. 한지가 문화재 복원에 쓰인다는 서술 자체는 근거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일본어 위키백과 '和紙' 항목은 와시가 세계 각지의 문화재 복원에도 쓰이며 '1000년 이상'이라고 일컬어지는 보존성을 지녔다고 평가된다고 적는다. 같은 항목은 가장 얇은 와시로 알려진 도사 덴구조시가 고문서와 회화 등 문화재 수복과 보강에 쓰이고, 해외 미술관과 연구기관에서도 많이 쓰인다고 적는다. 같은 항목은 와시 생산자가 1941년 1만3000곳 이상에서 2016년 기계뜨기를 포함해 207곳으로 줄었다고 적는다.
| 구분 | 한지 | 와시(和紙) | 선지(宣紙) |
|---|---|---|---|
| 주재료 | 닥나무와 황촉규(국가유산청 한지장 자료) | 삼, 닥나무(고조), 미쓰마타, 간피 등 | 짧은 볏짚 섬유를 70%까지 배합 |
| 뜨는 방식 | 전통은 흘림뜨기, 가둠뜨기는 일본에서 유입 | 805~809년 가미야인 설치와 함께 나가시즈키 확립 | 중국식 흘림뜨기는 일본식과 방법이 다름 |
| 섬유에 대한 서술 | 껍질 섬유가 길고 결합 강도가 강함 | 서양지보다 섬유가 월등히 길다고 설명됨 | 짧은 섬유를 뜨기에 맞춘 낮은 점도의 점액 사용 |
| 점제 | 자료에 적혀 있지 않음 | 자료에 적혀 있지 않음 | 양도등을 쓰고 황촉규는 쓰지 않음 |
| 후공정 기록 | 도침으로 밀도를 높이고 먹 번짐을 줄임 | 자료에 적혀 있지 않음 | 자료에 적혀 있지 않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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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한지가 질긴 까닭은 세 자리에 나뉘어 적혀 있다. 하나는 닥나무 껍질 섬유가 길고 결합 강도가 강하다는 재료 쪽 서술이다. 다음은 앞물질로 물을 떠 뒤로 흘리고 두 장을 엇갈려 붙이며 외발로 여러 겹을 뜬다는 공정 쪽 서술이다. 마지막은 도침으로 밀도를 높이고 먹 번짐을 줄인다는 후공정 쪽 서술이다. 세 서술은 각각 다른 자료에 적혀 있고, 하나의 원인으로 모아 설명한 자료는 확인되지 않는다.
이름과 제도도 함께 읽어야 한다. 중국 등지에서 계림지와 고려지, 조선지로 불렸다는 기록, 조지소와 조지서의 연대, 지장과 도침군의 인원이 모두 문헌에 적혀 있다. 와시와 선지에 관한 서술은 뜨는 방식과 원료, 점제에서 서로 다르게 적혀 있다. 숫자와 연대를 직접 확인하려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한국민속대백과사전, 국가유산포털의 해당 항목을 펼쳐 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