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답, 알 서사는 삼국사기에도 적혀 있다
알에서 태어난 주몽(朱蒙) 이야기는 삼국사기(三國史記) 고구려본기 권13에 이미 적혀 있다. 이규보의 동명왕편(東明王篇)은 같은 이야기를 141운 282구의 긴 시로 다룬다. 광개토왕릉비문에 대해서는 동명왕 신화가 그 서두에 수록되어 있다는 사실만 확인된다. 비문 서두의 서술이 두 기록과 어디서 갈라지는지는 이 글이 쓰는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동명왕 신화는 다른 이름으로도 불린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이 신화를 주인공의 이름을 따 주몽신화(朱蒙神話)라고도 부른다고 적는다. 이 글은 같은 인물을 주몽으로 부른다. 삼국사기가 세상을 떠난 뒤의 호로 적은 이름은 동명성왕이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가 적은 다섯 되 크기의 알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권13은 주몽의 탄생을 이렇게 전한다. 유화(柳花)는 햇빛에 비치어 잉태했다. 유화는 알 하나를 낳았다. 알의 크기는 다섯 되쯤이었다. 위키문헌에 올라 있는 번역문의 탄생 대목은 다음과 같다. "햇빛이 다시 따라가, 비추어, 이로 인하여 잉태하여 알 하나를 낳았는데, 그 크기가 다섯 되 쯤 되었다."
그다음 장면에서 금와왕은 알을 버린다. 삼국사기는 왕이 알을 개와 돼지에게 버렸으나 모두 먹지 않았다고 적는다. 길 가운데 버렸더니 소와 말이 피했다고도 적는다. 들에 버렸더니 새가 날개로 덮어주었다고 이어 적는다. 그 뒤 어머니가 알을 물건으로 싸서 따뜻한 곳에 두었고, 한 사내아이가 껍질을 깨고 나왔다. 삼국사기는 그 아이의 골격과 외모가 뛰어나고 기이했다고 적는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이 이야기의 혈통을 짧게 요약한다. 주몽은 하늘의 신 해모수(解慕漱)를 아버지로 한다. 주몽의 어머니는 강물의 신 하백(河伯)의 딸 유화다. 주몽은 그 사이에서 알로 태어난다. 알 서사는 한 문헌에만 있는 특이한 대목이 아니라 여러 기록이 함께 쓰는 뼈대로 볼 수 있다.
삼국사기가 적은 이름의 뜻과 기원전 37년 건국
삼국사기는 이름의 뜻도 적는다. 부여의 속어로 활 잘 쏘는 이를 주몽이라 불렀고, 그것이 이름이 되었다는 설명이다. 건국 시점도 같은 권에 적혀 있다. 삼국사기는 이때 주몽의 나이를 스물두 살로 적는다. 그 해는 신라 시조 혁거세 21년 갑신년, 곧 기원전 37년으로 적혀 있다.
삼국사기 권13은 추격 장면도 적는다. 물고기와 자라가 떠올라 다리를 이루었고, 주몽은 강을 건넜다. 뒤쫓던 기병들은 강을 건널 수 없었다. 같은 권은 주몽의 마지막도 짧게 적는다. 한문 원문은 "秋九月,王升遐,時年四十歲。葬龍山,號東明聖王。"이다. 왕은 마흔 살에 세상을 떠나 용산(龍山)에 묻혔고, 동명성왕이라 불렸다.
원문을 직접 읽으려는 독자는 세 곳을 확인하면 된다. 삼국사기 권13의 번역문은 위키문헌에서 볼 수 있다. 동명왕 신화와 동국이상국집 해설은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있다. 주몽신화 항목은 국립민속박물관의 한국민속대백과사전에 있다.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3의 동명왕편, 1241년 간행과 141운 282구
동명왕편은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실려 있다. 동국이상국집은 고려 후기 문신 이규보의 시문집이며, 총 53권 13책이다. 아들 함(涵)이 1241년 8월에 전집 41권을 간행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후집 12권이 나왔다. 1251년에는 손자 익배(益培)가 분사대장도감에서 교정하고 증보해 다시 펴냈다. 현재 전하는 판본은 영조 시대의 복각본으로 추정된다.
동명왕편은 전집 권3에 수록되어 있다. 이 시는 141운 282구 규모다. 형식은 오언고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이 작품이 "영웅서사시"라고 일컬어질 만한 특성을 갖추었다고 설명한다. 같은 해설은 동명왕편이 이 방면 자료 가운데 가장 장편이라고 적는다.
동명왕편의 서술 범위도 같은 해설에 정리되어 있다. 동명왕편은 해모수와 유화가 만나는 과정에서 시작한다. 그다음 주몽의 탄생과 시련, 고구려 건국까지 이어진다. 이어 왕자 유리(類利)의 왕위계승이 나온다. 끝에는 임금이 너그럽고 어진 마음과 예의로 나라를 다스리기를 바라는 말이 붙어 있다. 서문은 구삼국사(舊三國史)라는 사서가 있었다는 사실도 알려준다.
구삼국사 계열 전승과 삼국사기, 항목별로 다른 대목
국립민속박물관의 한국민속대백과사전은 기록의 무게를 이렇게 정리한다. 주몽에 관한 신화 기록은 여러 문헌에 나타난다. 그 가운데 구삼국사와 고구려본기의 기록이 가장 자세하고 신화적 요소가 풍부하다는 평가다. 광개토왕릉비문의 서두에도 동명왕 신화가 수록되어 있다. 다만 비문 서두의 서술이 삼국사기나 동명왕편과 어디서 갈라지는지는 이 글이 쓰는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먼저 알이 나온 자리가 다르다. 삼국사기 권13은 유화가 알 하나를 낳았고 그 크기가 다섯 되쯤이라고 적는다. 구삼국사 계열 전승은 유화가 왼쪽 겨드랑이에서 큰 알을 낳았다고 적는다. 그다음 어린 시절 묘사가 다르다. 삼국사기 권13은 껍질을 깨고 나온 아이의 골격과 외모가 뛰어났다고만 적는다. 구삼국사 계열 전승은 주몽이 한 달에 말을 했고 활로 파리를 백발백중 잡았다고 적는다.
말을 얻는 대목은 구삼국사 계열 전승에 있다. 주몽은 준마의 혀뿌리에 바늘을 꽂아 여위게 만든 뒤 금와왕에게서 그 말을 얻는다. 결말도 갈라진다. 삼국사기 권13은 왕이 마흔 살에 세상을 떠나 용산에 묻혔다고 적는다. 구삼국사 계열 전승은 왕이 즉위 19년에 하늘로 올라간 뒤 내려오지 않았다고 적는다. 태자는 왕이 남긴 옥채찍을 용산에 묻고 장사를 지냈다.
정리
동명왕 신화는 한 문헌에만 머물지 않는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이 신화가 동국이상국집에 수록되어 있다고 적는다. 그 밖에 삼국유사(三國遺事)와 삼국사기, 광개토왕릉비문의 서두, 동국여지승람의 평양조 등에도 수록되어 있다고 적는다. 삼국유사 북부여조는 북부여의 천제를 해모수라 하고 그 아들을 해부루(解扶婁)라고 적는다. 그 뒤 해부루가 상제의 명을 따라 동부여로 옮겨가고 동명이 북부여를 이어받았다고 서술한다.
널리 통용되는 줄거리는 어느 한 문헌을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다. 그 줄거리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 그리고 동명왕편의 기록을 절충한 것으로 설명된다. 한국민속대백과사전은 주몽신화에 부여계 동명왕신화와 해씨계신화, 수신계신화, 고조선신화가 종합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단군기(檀君記)는 주몽과 부루를 어머니가 다른 형제로 적는다. 삼국사기는 유화가 동부여에서 숨지자 금와왕이 태후의 예로 장사하고 태후 신묘를 세웠다고 적는다. 그러므로 독자는 줄거리를 읽을 때 문헌 이름과 권수를 함께 적어 두는 편이 안전하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