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답: 우리나라 귀신은 범신론적 귀신과 죽은 자의 넋으로 나뉜다
우리나라 귀신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범신론적 귀신이고, 다른 하나는 죽은 자의 넋인 사령이다. 이 분류는 한국학중앙연구원 백과사전의 '귀신' 항목에 나온다. 이 항목은 귀신을 이렇게 정의한다. "귀신은 초인간적 또는 초자연적 능력을 발휘하는 주체로 여겨지는 신이다." 이 정의로 보면 귀신은 무서운 유령만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외국어 매체의 설명은 조금 다르다. 광주국제센터의 광주뉴스(Gwangju News)는 귀신을 생의 목적을 이루지 못한 망자의 혼으로 소개한다. 이 매체는 귀신에 정확히 네 가지 유형이 있다고 쓴다. 또 귀신 신앙이 자연 세계의 영을 다루는 무속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한다. 코리아헤럴드(The Korea Herald)는 한국의 초자연 신화를 신화·전설·민담의 세 범주로 나눈다. 분류 기준은 출처마다 다르다는 점을 함께 기억해 둘 만하다.
『후한서』 고구려전, 『삼국유사』 귀교, 1892년 채씨효행도에 남은 기록
한국학중앙연구원 백과사전은 귀신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 『후한서(後漢書)』 고구려전을 든다. 같은 항목은 『삼국유사』의 비형랑 이야기도 소개한다. 이 이야기는 신라 제25대 진지왕 때의 일로 전해진다. 비형랑이 놓은 다리는 귀교(鬼橋)라고 불렸다. 백과사전은 이 대목에서 "그 다리 이름을 귀교(鬼橋)라고 한 것은 바로 이 까닭이다."라고 적는다.
도깨비 기록도 여러 자료에 남아 있다.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도깨비는 삼국시대부터 돗가비·허주·독각귀·도채비·깨비대감 등으로 불렸다. 도깨비는 장수와 재물을 기원하는 상상의 존재였다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권21에 나오는 '두두리'도 도깨비의 옛 모습으로 여겨진다. 화첩 '채씨효행도'에는 도깨비가 채홍념을 돕는 장면이 있다. 채홍념은 악천후 때문에 아버지 제사에 가지 못할 처지였다. 이 화첩은 평강 채씨 채홍념의 손자와 증손자가 1892년에 만들었다.
별상과 아기씨, 원귀가 신으로 모셔진 사례
한국문화정보원 지역N문화에 따르면 무속에서는 비정상적인 죽음이 원귀와 이어진다. 비정상적인 죽음은 너무 일찍 죽는 것, 여행 중에 죽는 것, 결혼하지 못하고 죽는 것 등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백과사전은 연산군·광해군·사도세자를 '별상'이라는 독자적 부류로 묶는다. 이들이 왕권의 좌절과 비극적인 죽음을 겪은 원귀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같은 항목은 공민왕·사도세자·최영·임경업 등이 무신(巫神)이나 마을 서낭신으로 모셔진다고 쓴다.
서울 왕십리 일대에서 모신 아기씨도 비슷한 사례로 소개된다. 지역N문화는 이 아기씨가 천연두로 죽은 존재로 보인다고 설명한다. 조선시대 천연두는 20년에 한 번꼴로 유행했다. 그래서 일평생 피하기 어려운 질병이었다고 한다. 아기씨는 마을에서 모셔지면서 더 이상 원귀가 아닌 마을신으로 바뀌었다. 백과사전 '잡귀' 항목은 제주도에서 도깨비를 동신으로까지 모시기도 한다고 적는다. 이 사례들은 두려운 존재와 모시는 신의 경계가 고정되지 않았음을 보여 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잡귀와 3대 미성년귀신, 신들의 서열 맨 아래
한국학중앙연구원 백과사전 '잡귀' 항목은 잡귀를 사귀(邪鬼)라고도 부른다고 쓴다. 잡귀가 대개 나쁜 해를 끼친다는 이유다. 이 항목은 잡귀를 불행한 인간의 사령, 병을 일으키는 역신, 그 밖의 잡신으로 나눈다. 지역N문화는 잡귀가 신들의 서열에서 가장 아래에 속한다고 설명한다. 충청남도 지방에서는 처녀귀신인 왕신을 가장 두려운 악신으로 여긴다.
백과사전 '귀신' 항목은 3대 미성년귀신도 소개한다. 처녀귀신 손말명, 총각귀신 몽달귀신, 아기귀신 공진이 또는 태자귀다. 백과사전은 이들이 이론적으로 잡귀붙이에 들 수 있다고 쓴다. 광주뉴스는 처녀귀신을 네 가지 귀신 가운데 가장 흔한 귀신으로 꼽는다. 이 매체는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의 혼인 물귀신도 소개한다. 눈·코·입과 팔다리가 없는 달걀 모양의 달걀귀신도 함께 다룬다.
사람들은 이런 존재를 달래는 의례도 지냈다. 백과사전에 따르면 잡신을 달래려고 사령제를 지내거나 굿의 마지막 순서로 거리풀이를 한다. 나라에 역질이 돌 때에는 여귀에게 여제를 지냈다. 여제는 봄에는 청명, 가을에는 7월 보름, 겨울에는 10월 초하루에 지냈다.
1923년판 조선어독본의 오니와 1967년 영화 속 소복 처녀귀신
도깨비와 처녀귀신을 항목별로 나란히 놓으면 다음과 같다. 첫째, 도깨비의 뿔은 교과서에서 확인된다. 조선총독부 학무국은 '조선어독본'을 만들며 일본 '심상소학독본'을 일부 차용했다. '조선어독본' 1915년판에는 도깨비 삽화가 없었고, 1923년판부터 뿔 달린 오니가 나온다. 다만 차용이 삽화의 직접 원인이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둘째, 소복 처녀귀신은 영화에서 확인된다. 주간경향은 1967년 권철휘 감독의 <월하의 공동묘지>가 이 모습을 대중에게 각인시켰다고 쓴다. 1967년 이전의 같은 형상을 보여 주는 국내 자료는 아직 확보하지 못했다고 한다.
현재의 인식도 이 이미지와 겹친다. 국립민속박물관이 어린이와 가족 1200명을 조사했더니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도깨비를 일본 오니의 모습으로 인식했다. 6~9세 어린이 조사에서는 70%가 도깨비를 무서운 존재로 보았다. 코리아헤럴드는 한국 귀신이 거의 모두 여성이며 흰 한복에 긴 검은 머리로 그려진다고 쓴다. 그러나 주간경향에 따르면 흰 상복은 살아 있는 유족이 입는 옷이다. 고전소설 속 홍련은 녹의홍상(綠衣紅裳), 즉 연두색 저고리와 다홍치마 차림이다.
장화홍련 이야기는 기록의 층이 뚜렷한 사례다. 미국 의회도서관에 따르면 이 이야기는 1656년의 실제 사건에 바탕을 둔다. 평안도 철산 부사 전동흘이 계모의 학대로 억울하게 죽은 두 자매의 사건을 맡았다. 19세기에 전동흘의 후손들이 '가재사실록(Kajaesa sillok)' 같은 한문 문헌에 이 사건을 기록했다. 미국 의회도서관은 가장 이른 한글본 가운데 하나인 '쟝화홍년젼'을 소장하고 있다. 원문 자료는 미국 의회도서관 블로그 글 'Ghost Stories from the Asian Reading Room'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백과사전 웹사이트에서 직접 읽을 수 있다.
| 대상 | 성격 | 문헌·연도 | 출처 기관 |
|---|---|---|---|
| 비형랑의 귀교 | 비형랑이 놓은 다리 | 『삼국유사』, 신라 제25대 진지왕 때 | 한국학중앙연구원 |
| 별상(연산군·광해군·사도세자) | 왕권의 좌절과 비극적 죽음을 겪은 원귀 | 확인 안 됨 | 한국학중앙연구원 |
| 왕십리 아기씨 | 원귀에서 마을신으로 바뀜 | 조선시대 천연두(20년에 한 번꼴 유행) | 한국문화정보원 지역N문화 |
| 3대 미성년귀신 | 손말명·몽달귀신·공진이(태자귀), 이론상 잡귀붙이 | 확인 안 됨 | 한국학중앙연구원 |
| 도깨비 | 장수와 재물을 기원하는 상상의 존재 | 신증동국여지승람 권21, 1892년 채씨효행도, 1923년판 조선어독본 | 뉴시스 |
| 장화·홍련 | 계모의 학대로 억울하게 죽은 두 자매 | 1656년 사건, 19세기 가재사실록 | 미국 의회도서관 |
정리
우리나라 귀신은 범신론적 귀신과 죽은 자의 넋인 사령이라는 두 갈래로 설명된다. 억울한 죽음을 겪은 원귀 가운데 일부는 별상이나 아기씨처럼 신으로 모셔졌다. 잡귀는 서열 맨 아래에 놓였고, 사람들은 사령제와 거리풀이로 이들을 달랬다. 뿔 달린 도깨비와 소복 처녀귀신은 1923년 교과서와 1967년 영화 같은 근대 자료에서 확인되는 모습이다. 그래서 귀신 이야기를 읽을 때에는 그 모습이 어느 문헌, 어느 연도에 처음 보이는지 따져 보는 편이 좋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