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답, 두 책은 단군의 어머니를 다르게 적었다

짧은 답을 먼저 쓴다. 삼국유사와 제왕운기는 단군의 어머니를 서로 다르게 적었다. 삼국유사는 곰이 변한 여인을 적었다. 제왕운기는 환웅의 손녀를 적었다. 삼국유사 권제1의 고조선 대목은 이렇게 전한다. “삼칠일(三七日, 21일)간 금기를 지킨 곰은 여자로 변했으나, 범은 금기를 지키지 못해 사람이 되지 못했다.”

제왕운기는 다른 모습을 전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비교 항목은 그 대목을 이렇게 옮긴다. “즉, ≪삼국유사≫의 웅녀가 사라지고 그 대신 환웅의 손녀가 등장한다. 환웅이 손녀로 하여금 약을 먹고 사람의 몸을 갖추게 한 후 단수신(檀樹神)과 혼인하게 한다.” 같은 사전의 다른 항목은 “손녀로 하여금 약을 마셔 사람이 되게 하고 단수신(檀樹神)과 혼인하여 단군을 낳았다”고 적었다.

그러면 왜 두 기록이 다른가. 근거로 삼은 자료를 보면, 삼국유사는 위서(魏書)와 고기(古記)를 인용했고 제왕운기는 《본기》를 인용했다고 적혀 있다. 다만 그 인용 차이가 어머니 서술을 갈라놓은 원인이라고 밝힌 설명은 확인되지 않는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고려시대 두 기록이 “기본적인 내용에서는 비슷하나 세부적인 부분에서는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고만 정리했다.

삼국유사 기이편, 위서와 고기를 인용한 최초 기록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고조선과 단군에 관한 최초의 기록으로 삼국유사 기이편(紀異篇)을 든다. 이 기록은 중국의 위서와 우리나라의 고기를 인용했다. 같은 사전은 정사인 삼국사기에는 이와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고 적었다. 그래서 단군 이야기를 확인하려면 먼저 삼국유사를 펼쳐야 한다. 이 점은 두 책을 비교하기 전에 알아 둘 조건으로 볼 수 있다.

삼국유사 권제1은 곰과 범의 이야기를 비교적 자세히 적었다. 먼저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같은 굴에서 살았다. 두 짐승은 환웅에게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항상 빌었다. 그다음 환웅은 신령한 쑥 한 다발과 마늘 스무 개를 주었다. 환웅은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 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는다면 곧 사람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결말은 앞에서 본 대로 삼칠일, 곧 21일에 갈렸다.

삼국유사는 환웅의 역할도 적었다. 환웅은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를 거느렸다. 그는 곡식과 생명, 질병, 형벌, 선악을 주관했다. 또 인간의 360여 가지 일을 주관해 인간 세계를 다스리고 교화시켰다고 기록됐다. 이 대목은 위키문헌의 삼국유사 번역 페이지에서 직접 읽을 수 있다. 제왕운기 쪽 설명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해당 항목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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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의 1908세와 제왕운기의 1038년

두 책은 숫자도 다르게 적었다. 삼국유사는 단군이 1천5백 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다고 적었다. 이어서 단군이 아사달에 숨어 산신(山神)이 되었다고 적었다. 그때 나이는 1908세였다. 제왕운기는 단군이 1038년 동안 다스렸다고 적었다. 그리고 아사달산(阿斯達山)에 들어가 신이 되었으니 죽지 않은 까닭이라고 적었다.

계보도 어긋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두 기록을 이렇게 비교한다. “단군의 어머니라는 점에서는 동일한 인물인데도 한쪽은 곰이 화신한 여인이고, 다른 한쪽은 신이 화신한 여인이다.” 같은 항목은 세대 수도 짚었다. 삼국유사에서 단군은 환인과 환웅의 뒤를 이은 부계의 3대다. 제왕운기에서 단군은 환인과 환웅으로 이어지는 가계의 4대째에 속하는 여인의 아들이 된다.

삼국유사 안에도 다른 계보가 함께 실렸다. 삼국유사 고구려조는 《단군기》(壇君記)를 인용했다. 그 기록은 단군이 서하(西河) 하백의 딸과 사랑을 이루어 부루라는 아이를 낳았다고 전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두 기록의 공통 기층도 짚었다. 같은 사전은 그 기층을 “사람 아니던 존재가 약을 먹고 사람의 몸을 얻어 여자가 된다”로 요약했다.

제왕운기, 1287년 출간과 1280년 은둔 시기의 제작

제왕운기가 언제 나온 책인지 보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제왕운기가 삼국유사보다 불과 십여 년 늦게 간행된 책이라고 적었다. 같은 사전은 제왕운기가 1287년에 출간되었다고 밝혔다. 이 책은 1360년과 1413년에 각각 중간되었다. 두 책의 간행 시차는 길지 않다.

제작 상황도 기록되어 있다. 이승휴는 1280년 충렬왕의 실정과 부원세력가들을 비판한 10여 건의 폐단을 상소했다. 그 일로 미움을 사 파직되어 은둔했다. 제왕운기는 그 은둔한 시기에 제작되었다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적었다.

책의 구성도 함께 적혀 있다. 하권은 우리나라 역사에 관한 내용이다. 하권은 동국군왕개국연대(東國君王開國年代)와 본조군왕세계연대(本朝君王世系年代)의 2부로 나뉜다. 같은 사전은 제왕운기의 저술 동기를 몽고의 강대한 외압 때문에 가지게 된 문화적 위기의식과 저항정신으로 설명한다. 그 동기는 같은 시기에 일연이 삼국유사를 저술하였던 동기와 같다고 적혀 있다. 또 제왕운기가 민간신앙이나 고기류 등을 통해 전승되어온 단군신화를 한국사 체계 속에 편입시켰다고 적혀 있다.

안개 낀 산속 동굴 입구을 설명하기 위한 AI 재현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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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별로 나란히 본 두 기록의 차이

두 기록의 차이를 항목별로 나란히 적는다. 첫째는 단군 표기다. 삼국유사는 제단 단(壇)자를 썼고, 제왕운기는 박달나무 단(檀)자를 썼다. 둘째는 인용 문헌이다. 삼국유사는 위서와 고기를 인용했고, 제왕운기는 《본기》를 인용했다.

셋째는 어머니다. 한쪽은 곰이 화신한 여인이고, 다른 한쪽은 신이 화신한 여인이다. 넷째는 세대다. 삼국유사의 단군은 부계 3대다. 제왕운기의 단군은 가계 4대째 여인의 아들이다.

다섯째는 조선의 구분이다. 삼국유사는 고조선조에서 단군조선과 기자조선을 함께 기록했다. 제왕운기는 전조선(前朝鮮) 항목에서 단군에 의한 조선을 기술했다. 후조선(後朝鮮) 항목에서는 기자에 의한 조선을 언급했다. 그리고 뒤따르는 위만조선까지 합쳐 삼조선(三朝鮮)으로 구분해 파악했다.

정리

정리한다. 삼국유사는 곰이 변한 여인을 단군의 어머니로 적었다. 제왕운기는 약을 먹고 사람이 된 환웅의 손녀를 단군의 어머니로 적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고려시대 두 기록이 기본 내용은 비슷하나 세부에서 차이를 보인다고 정리했다. 두 책이 서로 다른 자료를 인용했다는 사실도 함께 적혀 있다. 그러나 그 인용 차이가 어머니 서술을 갈라놓았다고 밝힌 설명은 확인되지 않는다.

뒤의 기록도 함께 보면 좋다. 세종실록 지리지의 단군에 관한 기록 중에서 문제된 이야기 토막은 제왕운기를 답습하고 있다. 또 제왕운기에서 시작된 단군기원의 역사의식은 고려 말 개혁파 신진사류에게 전승되었다. 그들이 조선을 개국했을 때 단군은 국조로서 치제화되었다. 동국통감을 비롯한 정사에서도 단군이 국조임을 밝혀 우리 역사의 첫머리에 기록하게 되었다. 두 기록을 함께 읽으면 이런 흐름이 드러난다고 볼 수 있다.

쑥 한 다발과 마늘이 놓인 상을 설명하기 위한 AI 재현 이미지
AI로 재현한 일러스트 · 실제 사진 아님 — 쑥 한 다발과 마늘이 놓인 상을 설명하기 위한 개념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