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답, 제16회가 끝내지 않은 것

「구운몽」 제16회의 각몽 장면은 꿈에서 깨는 대목으로 끝나지 않는다. 육관대사는 성진(性眞)에게 꿈과 인간세상을 둘로 나누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성진이 아직 꿈을 깨지 못했다고 덧붙인다. 이 글은 제16회의 문답과 거기에 인용된 장주(莊周)의 호접몽을 중심에 두고, 당나라 「침중기(枕中記)」와 「남가태수전(南柯太守傳)」, 조선의 몽유록, 「옥루몽(玉樓夢)」을 함께 읽는다. 이 글은 3부작 가운데 3부다.

「구운몽」은 숙종 때의 김만중(金萬重)이 지은 소설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이 작품을 불교적인 인생무상의 사상을 꿈을 통해 표현한 소설로 설명한다. 줄거리는 분석에 필요한 만큼만 적어 둔다. 같은 사전에 따르면 육관대사의 제자 성진은 세속의 부귀를 동경하다가 꿈을 꾸어 양소유(楊少遊)로 환생한다. 성진은 여덟 선녀의 환생인 미인과 결연하여 부귀영화를 누리다가 꿈을 깬다. 사전은 성진이 꿈을 깬 뒤 세상의 영욕이 모두 꿈과 같이 허무함을 깨닫고 불도에 귀의한다고 정리한다.

같은 사전은 덧없는 한때의 부귀영화를 가리키는 한자 숙어로 일장춘몽, 남가일몽, 한단지몽을 든다. 사전은 이 숙어들이 고사에서 유래했다고 밝힌다. 남가일몽은 「남가태수전」의 남가와 글자를 나눈다. 한단지몽은 「침중기」에 나오는 한단 길과 글자를 나눈다. 꿈 이야기가 숙어의 형태로도 남았음을 보여주는 겹침으로 볼 수 있다.

제16회 호승의 말과 성진의 大覺

「구운몽」 제16회에는 호승이 손뼉을 치며 크게 웃는 대목이 있다. 중국어 위키문헌에 실린 제16회 본문은 그 말을 이렇게 적는다. 胡僧拍掌大笑曰:「是矣,是矣!然只記夢中之一見,不記十年之同處,誰謂楊丞相聰明?」 호승은 양소유가 꿈속의 한 번 만남만 기억하고 십 년을 함께 지낸 일은 기억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누가 양 승상을 총명하다고 하겠느냐고 되묻는다.

이 지적의 중심에는 기억의 불균형이 있다. 호승은 양소유의 기억을 두 조각으로 갈라 보여준다. 한쪽은 꿈속의 한 번 만남이고, 다른 쪽은 십 년의 동처다. 양소유가 붙잡은 것은 앞쪽뿐이다. 기억이 삶의 길이를 담지 못하는 상황이 먼저 제시된다고 볼 수 있다. 꿈과 현실을 가르는 기준으로 기억을 쓰기 어렵다는 점을 읽을 수 있다.

같은 회에는 성진이 머리를 조아리고 눈물을 흘리며 말하는 대목도 있다. 본문은 그 말을 性真叩頭流涕曰:「性真已大覺矣!弟子無狀,操心不正,自作之孽,誰怨誰咎?로 적는다. 성진은 자신이 이미 크게 깨달았다고 말한다. 성진은 자기 마음을 바르게 지키지 못했으니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탓하겠느냐고 말한다. 깨달음을 말하는 자리에서 책임을 자기 안으로 돌리는 점이 눈에 띈다. 「구운몽」의 한문 본문은 중국어 위키문헌에서, 작품 해설은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여관 방 마루에 놓인 낡은 베개을 설명하기 위한 AI 재현 이미지
AI로 재현한 일러스트 · 실제 사진 아님 — 여관 방 마루에 놓인 낡은 베개을 설명하기 위한 개념 이미지

육관대사의 되물음과 장주의 호접몽

육관대사의 말은 성진의 선언과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제16회 본문에는 다음 구절이 있다. 且汝以夢與人世,分爲二也。汝夢猶未覺也。 육관대사는 성진이 꿈과 인간세상을 둘로 나누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성진의 꿈이 아직 깨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 구절은 깨달음의 기준을 옮겨 놓는다. 꿈에서 눈을 뜨는 일과 꿈을 깨는 일이 같지 않다는 말로 읽을 수 있다. 성진이 꿈을 허무하다고 판정하는 순간, 성진은 꿈과 현실을 두 개로 세운다. 육관대사가 문제로 삼는 것은 그 나눔이다. 허무하다는 결론조차 아직 나눔 위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회에서 육관대사는 장주의 호접몽을 끌어온다. 본문은 莊周夢爲蝴蝶,蝴蝶又變爲莊周。라고 적는다. 그리고 性真少遊,孰是夢也?孰非夢也?라고 되묻는다. 성진과 소유 가운데 무엇이 꿈이고 무엇이 꿈이 아니냐는 물음이다. 답을 내놓지 않고 물음으로 남기는 방식이 이 대목의 특징으로 볼 수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구운몽」의 꿈을 두 방향으로 설명한다. 성진의 꿈에서는 양소유의 삶이 제시되고, 양소유의 꿈에서는 육관대사나 성진의 모습이 나타난다는 설명이다. 같은 사전은 이러한 꿈의 세계가 현실과 꿈을 구분하려는 의식 자체를 헛된 망상으로 보는 불교의 공사상에 근거하여 설정되었다고 밝힌다. 사전은 또 장자(莊子)의 「호접몽설화」를 읊은 이정보(李鼎輔)의 시조가 대체로 꿈의 허무함을 노래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제16회의 물음은 허무함을 노래하는 자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고 볼 수 있다.

양소유가 꼽은 유도와 선도와 불도

제16회에는 양소유가 세 가지 도를 꼽는 말이 있다. 본문은 天下有三道:日儒道,日仙遭,日佛道。三遭之中,唯佛最高。라고 적는다. 양소유는 천하에 유도와 선도와 불도가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셋 가운데 불교가 가장 높다고 말한다. 위의 인용은 중국어 위키문헌 본문의 글자를 그대로 옮긴 것이다.

본문은 仙遭近誕,自古隸之著甚多,而終無所驗,秦皇漢武及玄宗皇帝可鑑也。라고 적는다. 양소유는 선도가 허탄에 가깝다고 말한다. 양소유는 예로부터 기록은 많지만 끝내 효험이 없었다고 말한다. 양소유는 진시황과 한무제, 현종 황제를 그 보기로 든다.

이 말은 작품 속 인물의 말이다. 이 말이 작가의 주장과 같다고 볼 근거는 근거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작품 안에 세 도를 나란히 놓고 높낮이를 매기는 대목이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구운몽」을 어느 사상으로 읽을지 따질 때 이 대목이 출발점이 된다고 볼 수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작품 전체를 불교적인 인생무상의 사상으로 설명한다.

오래된 나무 뿌리 밑의 작은 구멍을 설명하기 위한 AI 재현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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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관대사가 말한 『금강경』 대법

제16회에는 육관대사가 경전을 설하겠다고 말하는 대목이 있다. 본문은 我當說《金剛經》大法,以悟汝心,而當有暫來弟子,汝蛄待之。라고 적는다. 육관대사는 『금강경』 대법을 설해 성진의 마음을 깨우치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잠시 올 제자가 있으니 기다리라고 말한다.

이 말에서 가르침은 경전의 이름과 함께 제시된다. 깨달음이 말과 강설의 형태로 다룤어지는 대목으로 볼 수 있다. 근거 자료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이 말이 제16회 본문에 있다는 사실까지다. 이 말이 성진의 '大覺' 선언보다 앞인지 뒤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앞뒤 순서를 단정하지 않아도 읽을 수 있는 것이 있다. 꿈을 다룬 문답과 『금강경』 대법에 대한 말이 같은 회 안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은 「구운몽」을 불교 쪽에서 읽어 왔던 해석의 근거 가운데 하나로 볼 수 있다. 다만 같은 회에 유도와 선도를 꼽는 말도 함께 있다는 사실을 함께 보아야 한다.

「침중기」의 노생과 「남가태수전」의 순우분

「침중기」의 한문 본문은 위키문헌에서 읽을 수 있다. 본문은 開元七年,道士有呂翁者,得神仙術,行邯鄲道中,息邸舍로 시작한다. 개원 7년에 신선술을 얻은 도사 여옹(呂翁)이 한단 길을 가다 여관에서 쉬는 장면이다. 본문은 여옹이 베개를 건네는 대목을 翁乃探囊中枕以授之,曰:“子枕吾枕,當令子榮適如志。”라고 적는다. 노생(盧生)은 꿈속에서 두 번 유배되고 두 번 재상에 올라 五十餘年,崇盛赫奕의 삶을 누린다. 그러나 본문은 깨어나는 순간을 盧生欠伸而悟,見其身方偃於邸舍,呂翁坐其傍,主人蒸黍未熟,觸類如故。라고 적는다.

「남가태수전」의 순우분은 당 정원 7년 9월에 취해 병이 나 집 동쪽 행랑에 눕는다. 순우분은 꿈속에서 금빛 글씨로 대괴안국(大槐安國)이라 쓰인 성에 들어간다. 순우분은 남가군을 20년 동안 다스려 공덕비와 생사당이 세워질 만큼 치적을 쌓는다. 꿈에서 깨어나 보니 두 객이 발을 씻고 있고 해는 아직 서쪽 담에 지지 않았다. 본문은 꿈속의 시간을 夢中倏忽,若度一世矣라고 적는다. 괴목 아래 구멍에서는 수 섬의 개미와 붉은 머리의 큰 개미 두 마리가 나온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침중기」와 「남가태수전」의 꿈이 모두 조신의 꿈과 같은 내용을 다룬다고 설명한다. 같은 사전은 조신의 꿈이 꿈과 현실의 진위 문제를 제기하며, 꿈속의 50년이 각성 시의 하룻밤에 불과했음을 보여준다고 밝힌다. 두 당나라 이야기와 「구운몽」을 항목별로 놓으면 차이가 보인다. 「구운몽」 제16회에는 성진의 깨달음 선언과 육관대사의 되물음이 함께 놓여 있다. 첫째, 꿈에 드는 계기가 다르다. 「침중기」에서는 여옹이 건넨 베개가 계기이고, 「남가태수전」에서는 취해서 생긴 병이 계기다.

둘째, 깨어난 뒤 현실에 남은 시간은 두 이야기 모두 짧다. 「침중기」에서는 기장이 아직 익지 않았고, 「남가태수전」에서는 해가 서쪽 담에 지지 않았다. 셋째, 깨어난 뒤의 행동은 갈린다. 노생은 총욕의 도와 궁달의 운, 득상의 이치와 사생의 정을 모두 알게 되었다고 사례한다. 순우분은 남가의 헛됨을 느껴 도문에 마음을 두고 술과 색을 끊었으며, 정축년에 47세로 죽는다. 넷째, 「남가태수전」에는 전 화주참군 이조의 찬이 붙어 貴極祿位,權傾國都。達人視此,蟻聚何殊。라고 적는다.

산사 마당에 선 사람의 뒷모습을 설명하기 위한 AI 재현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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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유록과 「원생몽유록」, 「사수몽유록」

조선에는 꿈을 틀로 삼은 몽유록이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몽유록의 내용을 이렇게 정리한다. 현실 세계의 주인공이 꿈을 통해 다른 세계로 들어가 여러 가지 경험을 하고, 꿈에서 깨어 다시 현실로 되돌아온다는 것이다. 같은 사전은 몽유록이 '현실-꿈-현실'로 진행되는 액자식 구성이라고 설명한다. 꿈이 이야기의 가운데 자리에 놓인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같은 사전은 현존하는 『금오신화』에 실린 5편의 소설이 구성상 한결같이 몽유의 형식을 빌리고 있다고 밝힌다. 사전은 몽유록이라는 유형의 성격이 「원생몽유록」에서 확립되었다고 설명한다. 「사수몽유록(泗水夢遊錄)」은 1942년 『인문평론(人文評論)』 제2권 제4호에 이명선(李明善)이 소개한 작자 미상의 필사본으로 전해진다. 사전은 「사수몽유록」에서 양과 묵, 노와 불의 침략이 전후로 네 차례 있었다고 정리한다. 꿈 안에서 사상의 대립이 전쟁의 모습으로 나타난 사례로 볼 수 있다.

사전은 몽유록에서 '꿈'이라는 비현실적 세계를 통해 현실적 세계에 대한 비판 의식이 강하다고 설명한다. 이 설명은 「구운몽」 제16회의 문답과 견주어 읽을 만하다. 몽유록에서 꿈은 현실을 비추는 자리로 쓰인다. 「구운몽」 제16회에서는 꿈과 현실을 둘로 나누는 태도 자체가 물음의 대상이 된다. 두 방향은 꿈을 다루는 서로 다른 태도로 볼 수 있다.

남영로의 「옥루몽」이 바꾼 것

「옥루몽」은 19세기에 남영로(南永魯)가 지은 고전소설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이 작품을 64회의 회장체 소설이라고 설명한다. 사전은 그 분량이 「구운몽」 분량의 3배나 되는 대장편이라고 밝힌다. 사전은 「옥루몽」을 「구운몽」을 환골탈태한 작품으로 볼 수 있다고 적는다. 다만 그 구조나 주제, 사상은 「구운몽」과 사뭇 다르다고 덧붙인다.

차이의 핵심은 꿈의 자리와 현실에 대한 평가다. 사전은 「구운몽」이 현실의 삶을 꿈으로 처리하며 부정적인 인식을 보여준 것과 달리, 「옥루몽」은 현실의 삶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설명한다. 사전은 「옥루몽」이 「구운몽」과 달리 선관선녀의 꿈의 세계를 설정하여 인간계의 삶의 모습을 그렸다고 밝힌다. 사전은 또 「옥루몽」이 유교 사상을 골격으로 하면서 불교 및 도교 사상을 수용했다고 설명한다. 꿈을 두는 위치가 바뀌면 현실에 대한 평가의 방향도 달라진다고 볼 수 있다.

수용의 흔적은 무대에도 남아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1940년 2월에 조선성악연구회가 「옥루몽」을 창극화하여 제일극장에서 공연했다고 적는다. 제16회의 물음이 후대의 몽자류 작품에서 어떻게 달라졌는지 따질 때 「옥루몽」은 비교의 자리에 놓인다고 볼 수 있다.

함께 읽기: 《구운몽》의 창작 시기는 왜 1687년으로 좁혀지나 (1/3) · 《구운몽》의 여덟 인연은 어떤 반복으로 배치되는가 (2/3)

정리, 「구운몽」 제16회가 남긴 물음

「구운몽」 제16회의 문답은 꿈에서 깨는 장면을 결말로 쓰지 않는다. 육관대사는 성진이 꿈과 인간세상을 둘로 나누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성진과 소유 가운데 무엇이 꿈이냐고 되묻는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이러한 꿈의 세계가 불교의 공사상에 근거하여 설정되었다고 설명한다.

당나라 「침중기」와 「남가태수전」은 짧은 현실과 긴 꿈을 맞세운다. 조선의 몽유록은 '현실-꿈-현실'의 액자식 구성 안에서 현실에 대한 비판 의식을 드러낸다. 19세기 「옥루몽」은 현실의 삶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이 세 갈래를 나란히 놓으면 제16회의 물음이 어느 지점에 서 있는지 가늠할 수 있다. 「구운몽」과 두 당나라 작품의 한문 본문은 중국어 위키문헌에서, 해설은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