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 한 알보다 가벼운 40g의 건축물, ‘갓일’의 세 공방
조선 시대 선비들이 외출할 때 상투 위에 단정히 쓰던 검은 모자 ‘갓(흑립·黑笠)’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으면 누구나 두 번 놀란다. 첫째는 햇빛을 비추면 반대편 풍경이 아스라이 비칠 만큼 촘촘하고 반투명한 그물 조직 때문이고, 둘째는 그 커다란 챙을 가진 모자의 무게가 달걀 한 알보다 가벼운 35~45g에 불과하다는 사실 때문이다. 바람이 불면 날아갈 듯 가벼우면서도 비에 젖거나 세월이 흘러도 우아한 곡선이 무너지지 않는 이 모자는, 단일 장인이 아닌 세 분야의 장인이 바통을 이어받아 완성하는 합작품이다.
국가무형유산 제4호 ‘갓일’은 윗부분 원통형 모자집을 말총으로 엮는 총모자장(鬃帽子匠), 아랫부분 넓은 챙을 대나무 실로 짜는 양태장(凉太匠), 그리고 두 부품을 하나로 결합해 뜨거운 인두로 곡선을 잡고 명주·먹물·옻칠로 마감하는 입자장(笠子匠)으로 나뉜다. 예로부터 조랑말의 말총과 해장죽이 풍부했던 제주도는 총모자와 양태의 최대 산지였고, 통영·예천·서울 등지의 입자장 공방에서 최종 조립이 이루어졌다.
제1공정 — 총모자장(鬃帽子匠): 나무 골 위에서 말총을 한 올씩 엮다
갓의 첫 번째 부품인 총모자(대우)는 선비의 상투를 감싸는 종 모양의 원통형 몸체다. 총모자장의 작업 방에 들어가면 장인은 종 모양으로 깎은 단단한 나무 틀인 ‘모자골’을 무릎 사이에 끼우고 앉아, 검고 윤기 나는 말 꼬리털과 갈기털(말총)을 한 올씩 교차시킨다.
총모자장의 작업 도구와 공정
- 말총 선별과 골걸이: 굵기가 균일하고 탄력이 좋은 말총을 골라 모자골 꼭대기(정수리) 중심에서부터 방사형으로 날줄을 걸어 내려간다.
- 쒜뿔(소뿔 골무)과 대바늘: 장인은 손가락에 소뿔을 깎아 만든 골무(쒜뿔)를 끼고, 끝이 뾰족한 작은 대바늘로 날줄 사이사이에 씨줄 말총을 한 올씩 꿰어 넣으며 촘촘하게 엮어 내려간다.
- 삶기와 건조: 나무 모자골 위에서 다 엮은 총모자는 모자골에 씌운 채로 끓는 물에 삶아낸 뒤 그늘에서 말린다. 단백질 섬유인 말총이 열수에 의해 나무 골의 입체 형태 그대로 고정되어, 골을 빼낸 뒤에도 찌그러지지 않는 탄성을 갖게 된다.
제2공정 — 양태장(凉太匠): 대나무를 머리카락보다 얇게 쪼개 무릎 위에서 짜다
갓일에서 가장 눈이 시리고 정교한 인내를 요구하는 작업이 바로 갓의 둥근 챙을 만드는 양태(凉太) 공정이다. 대나무라는 단단한 나무를 어떻게 비단처럼 하늘거리는 반투명 챙으로 바꾸는지 양태장의 작업 과정을 보면 경탄이 절로 나온다.
대나무가 머리카락 굵기 ‘대오리’로 바뀌는 순간
- 대나무 저미기와 바늘구멍 ‘조름판’: 마디가 길고 곧은 1~2년생 대나무의 겉껍질과 속살 사이(청죽과 속대 사이)를 종잇장처럼 얇게 벗겨낸 뒤, 앞칼로 머리카락 굵기만큼 잘게 쪼갠다. 이 가느다란 대나무 실을 강철판에 바늘구멍만 한 구멍을 뚫어 놓은 ‘조름판’에 통과시켜 잡아당기면 두께와 폭이 0.1mm 안팎으로 똑같이 고른 ‘대오리(대나무 실)’가 뽑혀 나온다.
- 무릎 가죽보 위에서의 날걸이와 사갱이치기: 양태장은 한쪽 무릎 위에 둥근 나무판과 가죽보를 올려놓고, 수백 가닥의 날줄 대오리 사이로 씨줄 대오리를 동심원 방향으로 돌려가며 엮는다. 오른쪽 엄지손톱 끝으로 날줄을 한 올씩 들어 올리며 씨줄을 넣기 때문에 숙련된 양태장의 엄지손톱 끝에는 대오리가 지나간 작은 홈이 파여 있다.
- 건조한 바람을 차단하는 작업 환경: 머리카락보다 얇은 대오리는 바람이 불거나 실내가 건조하면 금세 바삭하게 말라 끊어진다. 그래서 양태장은 여름에도 방문을 닫아 바람을 막고, 대오리에 끊임없이 물기를 축여가며 하루 종일 한 치씩 원을 넓혀 나간다.
제3공정 — 입자장(笠子匠): 불인두와 명주, 먹물, 옻칠로 생명을 불어넣다
총모자장이 엮은 원통형 말총 모자와 양태장이 짠 평평한 대나무 챙은 아직 반제품이다. 이 두 부품을 결합해 우리가 아는 검은 갓으로 탄생시키는 마지막 조율사가 바로 입자장(笠子匠)이다. 입자장의 공방 한가운데에는 늘 시뻘건 숯불 화로와 그 속에 꽂힌 여러 자루의 쇠 인두가 놓여 있다.
입자장의 조립·성형·마감 5단계
- 모자골 맞추기와 부레풀 접합: 총모자의 아랫단과 양태의 안쪽 구멍을 맞물려 끼우고, 민어 부레풀(어교)과 뜨거운 인두로 두 부품을 단단히 접착한다.
- 줄걸이와 버렁잡기(트집잡기): 화로에서 꺼낸 뜨거운 인두에 물을 살짝 묻혀 ‘치익’ 하는 수증기를 내면서 평평하던 대나무 양태를 지그시 누르고 당겨 완만하게 휘어진 우아한 곡면(우산 모양의 곡률)을 잡아낸다. 인두가 너무 뜨거우면 대나무 실이 타버리고, 식으면 휘어지지 않기에 장인은 뺨 가까이 인두를 가져가 열기를 가늠한다.
- 화주바르기(비단 입히기): 대나무 양태와 말총 총모자 위에 거미줄처럼 얇은 생명주(화주·박사)를 어교로 정교하게 발라 내구성을 높인다.
- 먹칠과 어교칠: 참기름 그을음으로 만든 고급 송연묵(먹물)과 어교를 섞어 수차례 솔질해 기품 있는 검은빛을 입힌다.
- 옻칠 마감과 갓끈 달기: 마지막으로 묽게 정제한 옻칠을 얇게 입혀 그늘에서 말리면 비를 맞아도 변형되지 않는 방수성과 은은한 광택이 완성된다. 여기에 대나무 테두리(영자)와 호박·구슬·비단 갓끈을 달면 비로소 한 점의 흑립이 탄생한다.
세계를 매혹시킨 조선의 검은 실루엣
최근 한국 사극 드라마와 영화, 글로벌 전시를 통해 조선의 갓은 전 세계 복식사 연구자와 디자이너들에게 ‘세계에서 가장 조형미가 뛰어난 반투명 모자’로 주목받고 있다. 말총을 삶아 형태를 기억시키는 총모자장, 대나무를 0.1mm 실로 뽑아 무릎 위에서 엮는 양태장, 불인두의 온도로 곡선을 조각하는 입자장까지—세 장인의 손끝이 만나는 지점에서 40g의 검은 달빛이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