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답, 백성을 모아 노래하고 언덕을 쳤다
수로부인(水路夫人)이 바다에서 돌아온 수단은 사람을 모아 노래를 부르고 막대기로 언덕을 치는 일이었다. 국립민속박물관 한국민속대백과사전은 그대로 하였더니 수로부인이 나왔다고 적는다. 삼국유사(三國遺事) 권2 수로부인 조는 이 일을 두 사건으로 나누어 적는다. 먼저 성덕왕(聖德王) 대에 순정공(純貞公)이 강릉 태수로 부임하다가 바닷가에서 점심을 먹는다. 그다음 바다에 임한 높이 천 길의 바위 절벽이 나오고, 그 위에 철쭉꽃이 활짝 피어 있다.
그다음 이틀 길을 더 간 임해정(臨海亭)에서 해룡이 갑자기 부인을 끌고 바다로 들어간다. 순정공은 땅에 넘어진 채 대책이 없었다고 기록됐다. 이때 또 다른 한 노인이 경내 백성을 모아 노래를 부르고 막대로 언덕을 치라고 조언한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백성들이 모여 해가(海歌)를 지어 부르니 용이 수로부인을 모시고 나왔다고 적는다. 결말을 적는 방식은 문헌마다 조금씩 다르다.
삼국유사 권2 수로부인 조의 첫 사건, 천 길 절벽 위 철쭉꽃
첫 사건의 배경은 바다에 임한 높이 천 길의 바위 절벽이다. 그 위에는 철쭉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수로부인이 꽃을 꺾어 바칠 사람을 묻자 종자들은 사람이 갈 수 없는 곳이라며 모두 사양했다. 삼국유사 권2 수로부인 조는 이 물음을 「折花獻者其誰?」로 적는다. 한국어로 옮기면 꽃을 꺾어 바칠 사람이 누구냐는 뜻이다.
그다음 암소를 끌고 지나던 노옹이 꽃을 꺾고 노래를 지어 바쳤다. 원문은 그 노옹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다고 적는다. 수로부인 조 끝에는 노인이 지은 헌화가(獻花歌) 향찰 원문이 실려 있다. 향찰 네 구는 「紫布岩乎邊希」로 시작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헌화가를 신라 성덕왕 때 한 노옹이 부른 4구체 향가로 분류한다.
국립민속박물관 한국민속대백과사전은 같은 장면을 조금 다른 말로 적는다. 성덕왕(재위 702~737) 때 순정공이 강릉 태수로 부임하는 길이었다. 그 길에서 수로부인이 천 길 벼랑 위 철쭉꽃을 갖고 싶어 했다고 적는다. 모두가 난색을 표했으나 소를 몰던 노인이 꽃을 꺾어 주며 헌화가를 지어 바쳤다고 이어진다. 위키문헌 헌화가 문서는 저자를 견우노옹(牽牛老翁)으로 표기한다. 같은 문서는 향찰 번역문 대부분에 저작권이 있다고 안내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 적는 이틀 뒤의 일, 임해정에서 끌려간 부인
두 번째 사건은 부임길 위에서 일어난다. 삼국유사 권2 수로부인 조는 이틀 길을 더 가 또 임해정이 있었다고 적는다. 그곳에서 점심을 먹을 때 해룡이 갑자기 부인을 끌고 바다로 들어갔다. 순정공은 땅에 넘어진 채 계책이 없었다고 적혀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도 이 일을 헌화가 사건 이틀 뒤의 일로 적고, 순정공이 손쓸 틈도 없었다고 서술한다.
국립민속박물관 한국민속대백과사전도 같은 사건을 적는다. 수로부인이 임해정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용이 나타나 바다 속으로 끌고 갔다는 서술이다. 같은 사전은 설화가 벼랑의 철쭉을 꺾는 사건과 바다의 용이 끌고 가는 사건으로 구성된다고 정리한다. 또 두 사건이 이야기로는 분리되어 있지만 제의 현장의 모습을 연속해 보여 준다는 점에서 중요성을 지닌다고 설명한다. 두 사건을 한 흐름으로 읽는 근거는 이 서술에서 나온다고 볼 수 있다.
삼국유사 권2의 해가 가사, 거북아 거북아 수로를 내놓아라
바다로 들어간 부인을 두고 또 다른 한 노인이 조언한다. 삼국유사 권2 수로부인 조의 이 대목은 「衆口鑠金」, 곧 여러 입은 쇠도 녹인다는 옛말을 인용한다. 원문은 이어 바다 속의 것이 어찌 여러 입을 두려워하지 않겠느냐고 되묻는 구절을 적는다. 그래서 노인은 경내 백성을 모아 노래를 부르고 막대로 언덕을 치면 부인을 볼 수 있다고 조언한다. 이 대목은 사람의 수와 소리를 해결의 조건으로 적은 서술로 볼 수 있다.
백성들이 부른 해가 가사도 같은 조에 실려 있다. 첫 구는 「龜乎龜乎出水路」이고, 거북아 거북아 수로를 내놓아라는 뜻이다. 이어지는 구절은 남의 아내를 빼앗은 죄가 얼마나 큰지 묻는다. 그다음 구절은 내놓지 않으면 그물로 잡아 구워 먹겠다고 위협한다. 노래가 부르는 대상이 용이 아니라 거북으로 적힌 점은 원문에서 그대로 확인된다. 두 이름의 관계에 대한 설명은 이 대목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성덕왕 재위 702~737년과 세 문헌의 결말 서술 차이
결말을 적는 방식은 문헌마다 갈린다. 삼국유사 권2 수로부인 조는 노인의 조언과 백성들이 부른 해가 가사까지 적는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백성들이 모여 해가를 지어 부르니 용이 수로부인을 모시고 나왔다고 적는다. 국립민속박물관 한국민속대백과사전은 노옹의 말대로 하였더니 수로부인이 나왔다고 적는다. 세 서술을 나란히 놓으면 조언과 노래는 겹치고, 용이 다시 등장하는지가 다르다. 원문은 위키문헌의 '번역:삼국유사/권제2' 문서에서 읽을 수 있고, 해설은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국립민속박물관 한국민속대백과사전에서 읽을 수 있다.
삼국유사 권2 수로부인 조는 수로부인의 자용(姿容)이 당대에 견줄 데 없었다고 적는다. 그래서 깊은 산과 큰 못을 지날 때마다 여러 번 신물에게 붙들렸다고 이어진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수로부인을 성덕왕 대 순정공의 부인으로 적는다. 같은 사전은 순정공을 상재(上宰)를 역임한 김순정(金順貞)으로 보인다고 설명하고, 그가 강릉 태수가 되었다고 적는다.
| 문헌 | 첫 사건 서술 | 둘째 사건 서술 | 노래를 부른 뒤 |
|---|---|---|---|
| 삼국유사 권2 수로부인 조(위키문헌) | 바다에 임한 높이 천 길 바위 절벽 위 철쭉꽃, 암소 끌던 노옹이 꽃을 꺾고 노래를 지어 바침 | 이틀 길을 더 간 임해정에서 해룡이 부인을 끌고 바다로 들어감 | 백성들이 해가를 부름, 첫 구는 「龜乎龜乎出水路」 |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학중앙연구원) | 성덕왕 때 한 노옹이 부른 4구체 향가 헌화가로 분류 | 헌화가 사건 이틀 뒤 바다의 용이 부인을 끌고 들어감, 순정공은 손쓸 틈 없음 | 용이 수로부인을 모시고 나왔다고 적음 |
| 한국민속대백과사전(국립민속박물관) | 성덕왕(재위 702~737) 때 천 길 벼랑 위 철쭉꽃, 소 몰던 노인이 헌화가를 지어 바침 | 수로부인이 임해정에 이르렀을 때 용이 나타나 바다 속으로 끌고 감 | 노래하고 막대기로 언덕을 치자 수로부인이 나왔다고 적음 |
| 헌화가 문서(위키문헌) | 저자를 견우노옹으로 표기, 향찰 네 구 수록 | 확인 안 됨 | 확인 안 됨 |
정리
수로부인을 되찾는 과정에서 기록된 수단은 백성을 모아 노래를 부르고 막대기로 언덕을 치는 일이었다. 삼국유사 권2 수로부인 조는 노인의 조언과 해가 가사를 함께 적는다. 해가가 부르는 대상은 거북이고, 가사는 내놓으라는 요구와 위협으로 이루어진다. 두 사건 사이에는 이틀 길이 놓여 있다.
해석은 하나로 모이지 않는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백성을 모아 노래한 행위를 기우제나 망제 같은 제사로 해석한다. 그리고 이때 수로부인이 사제적 역할을 담당한 것으로 본다. 같은 사전은 이 해석을 삼국유사 성덕왕조의 극심한 가뭄 기록과 연결한다. 또 해가와 구지가는 주술적 행위로 민심을 수습하려 한 의도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고 적고, 해가에 동해안 지역의 제의권을 장악하려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는 해석도 소개한다. 국립민속박물관 한국민속대백과사전은 이 설화에서 합리적 사유와 주술 관념이 병존한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고 평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