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답
『금오신화(金鰲新話)』는 김시습(金時習)이 경주 금오산에 머물던 30대에 지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그러나 이 책은 국내에서 오랫동안 실물이 보이지 않았다. 오늘 독자가 읽는 본문은 일본 간행본과 중국 다롄도서관 소장 조선 간행본을 거쳐 다시 알려졌다. 「만복사저포기」의 첫 장면도 이 전래 과정을 거친 본문 위에서 읽어야 한다. 이 글은 3부작 가운데 1부다.
이 글의 범위는 집필 배경과 판본사, 다섯 편의 구성, 『전등신화』와의 관계, 「만복사저포기」 첫 장면이다. 김시습의 생애는 경주 시절에 한정해 본다. 「만복사저포기」 밖의 다른 작품 장면은 이어지는 부에서 다룬다.
김시습과 경주 금오산 용장사
김시습은 1435년(세종 17)에 태어나 1493년(성종 24)에 사망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김시습 항목에서 그의 경주 시절을 이렇게 적는다. “31세 때인 1465년(세조 11) 봄에 경주 로 내려가 경주의 남산인 금오산(金鰲山) 에 금오산실(金鰲山室)을 짓고 칩거하였다.” 같은 항목은 그가 1465년부터 1471년까지 이곳에서 『금오신화』와 시편들을 지었다고 덧붙인다.
이 구절에서 금오산은 경주의 남산으로 소개된다. 책 이름의 '금오(金鰲)'와 산 이름의 '금오(金鰲)'는 같은 글자다. 이 일치는 책 이름만으로도 작품과 장소의 관계를 짐작하게 해 준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사전의 금오신화 항목은 장소를 더 좁혀 말한다. 30대의 작자가 금오산 용장사(茸長寺)에 은거하며 지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는 것이다. 다만 이 항목은 창작 시기와 장소에 여러 설이 있다는 점도 함께 밝힌다.
일본의 사전 사이트 고토뱅크(コトバンク)는 시기를 조금 다르게 적는다. 고토뱅크는 집필 시기를 31세부터 36세, 곧 1466~1471년 사이로 보는 설이 유력하다고 한다. 한국 사전은 31세를 1465년으로 잡고, 끝을 37세인 1471년으로 적는다. 두 자료를 나란히 놓으면 시작 연도와 나이 계산이 한 해씩 어긋난다. 이 차이는 집필 시기가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 '유력한 설'임을 다시 일깨워 준다고 읽을 수 있다.
대한제국 말엽까지 사라졌던 책과 최남선의 1927년 소개
독자는 『금오신화』를 늘 읽혀 온 고전으로 여기기 쉽다. 그러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금오신화 항목은 다르게 말한다. “본 문헌은 당대부터 희귀본이어서 간혹 문헌에서 기록을 찾아볼 수는 있으나, 대한제국 말엽까지 실물이 발견되지 않았다.”
이 구절은 이름과 실물을 구별하게 해 준다. 다른 문헌의 기록으로는 이름이 남았지만, 책 자체는 손에 잡히지 않았다는 뜻이다. 작품의 명성과 실물의 존재가 따로 움직였음을 보여 준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의 판본사는 '어떻게 다시 나타났는가'라는 물음에서 출발한다.
같은 항목에 따르면 최남선(崔南善)이 일본에서 간행되어 전해 오던 목판본을 발견했다. 최남선은 1927년 잡지 『계명(啓明)』 19호를 통해 이 책을 국내에 소개했다. 사전은 1884년에 간행된 목판본이 1653년(효종 4) 일본 간행본을 중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1653년 간행본의 대본은 오쓰카(大塚彦太郎) 가문에서 오래 전래되던 자료였다. 고토뱅크도 이 책이 일본에 전해져 1653년(조오 2)에 화각본으로 간행되었다고 적는다.
한국 사전은 조선 왕의 재위 연도로, 일본 사전은 일본 연호로 같은 해를 가리킨다. 두 나라의 자료가 1653년이라는 같은 해에서 만난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 계보는 국내 독자가 이 작품을 다시 만난 길이 일본 쪽 판본이었음을 보여 준다.
다롄도서관 소장 조선 간행본과 윤춘년
판본에 대한 이해는 한 번 더 바뀌었다. 사전에 따르면 일본 간행본보다 앞선 시기에 조선에서 간행된 목판본이 1990년대 후반 국내에 알려졌다. 이 판본은 중국 다롄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사전은 이 판본을 이렇게 설명한다. “다롄도서관 소장 조선 간행본은 명종 연간 간행된 것으로 보이며, 권수면 하단에 파평후학(坡平後學) 윤춘년(尹春年) 편집(編輯)이라는 문구가 수록되어 있다.”
이 문구에서 중요한 말은 '편집(編輯)'이다. 책 첫머리에 윤춘년이라는 인물이 이 책을 엮었다고 밝혀 둔 것이다. 이 문구는 조선 안에서도 편집을 거쳐 간행된 판본이 있었음을 보여 준다고 읽을 수 있다. 앞서 본 희귀본 설명과 나란히 놓을 수도 있다. 그러면 조선에서 간행된 적이 있는데도 국내에는 실물이 남지 않았다는 점이 드러난다.
이 책이 중국에 간 경위는 장서인이 알려 준다. 다롄도서관본에는 [양안원장서(養安院藏書)], [율전만차랑소장(栗田萬次郞所藏)] 등의 인문이 찍혀 있다. 사전은 이를 근거로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약탈한 책으로 본다. 이 책은 19세기 후반~20세기 초 이후 다롄도서관으로 옮겨진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장서인이 판본의 이동 경로를 짐작하는 단서가 된다는 점을 보여 주는 사례다.
간행본만 전한 것은 아니다. 「만복사저포기」 항목은 국내본으로 김집(金集)이 편찬한 한문소설집을 든다. 이 소설집에는 「만복사저포기」가 「이생규장전(李生窺牆傳)」과 함께 필사되어 있다. 이 기록은 작품이 목판 인쇄와 별도로 손으로 베껴 전해지기도 했음을 보여 준다고 볼 수 있다.
다섯 편과 일본 간행본 하권 말미의 '갑집(甲集)'
고토뱅크는 수록 작품을 다섯 편으로 적는다.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 「이생규장전」, 「취유부벽정기(酔遊浮碧亭記)」, 「남염부주지(南炎部洲志)」, 「용궁부연록(竜宮赴宴録)」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김시습 항목도 같은 수를 말한다. “『금오신화』는 현재까지 알려져 있는 것으로는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 등 5편이 전부이며, 이것들은 김시습의 사상을 검증하는 호재(好材)로 제공되어 왔다.”
같은 사전의 금오신화 항목은 일본 간행본을 설명하면서 다른 단서를 내놓는다. “하권의 말미에는 이 책을 ‘갑집(甲集)’이라고 한 기록이 있어, 본래의 작품 수는 5편 이상이었음을 알 수 있다.” 고토뱅크도 문헌에 따르면 속편이 있었다고 하지만 전해지지 않는다고 적는다.
두 사전은 서로 다른 근거로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한국 사전은 책 안의 기록을 근거로 삼는다. 일본 사전은 다른 문헌의 전언을 근거로 삼는다. 이 점은 지금의 다섯 편을 처음부터 닫힌 묶음으로 보지 않게 해 준다고 읽을 수 있다. 김시습 항목의 '현재까지 알려져 있는 것으로는'이라는 표현도 같은 조심성을 보여 준다.
명나라 구우의 『전등신화』 권2와 「모란등기」
『전등신화(剪燈新話)』는 1378년경 명나라 구우(瞿佑)가 지은 전기체 단편 소설집이다. 고토뱅크는 『금오신화』가 고려시대의 전기와 함께 직접적으로는 『전등신화』에서 구성의 영향을 받았다고 설명한다. 한국 사전의 판단은 더 조심스럽다. “『전등신화』와 『금오신화』 사이에 소재 및 내용상의 유사성이 있어 영향이 일단 인정되지만 유사성을 모두 영향의 결과로 볼 수는 없다.”
이 문장은 '영향'과 '유사성'을 구별하라고 요구한다. 비슷한 장면이 있다고 해서 모두 빌려 온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두 사전을 함께 읽으면, 영향은 인정하되 그 범위를 따로 따져야 한다는 점이 드러난다.
『전등신화』 권2의 「모란등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至正庚子之歲,有喬生者,居鎮明嶺下,初喪其耦,鰥居無聊” 우리말로 옮기면 '지정 경자년에 교생이라는 사람이 진명령 아래 살았다. 그는 막 짝을 잃고 홀아비로 지내며 무료했다'는 뜻이다. 교생이 만난 여인에 대해서는 이런 구절이 있다. “此奉化州判符君之女也,死時年十七,權厝於此” '이는 봉화주 주판 부씨의 딸로, 열일곱에 죽어 이곳에 임시로 안치되었다'는 뜻이다.
같은 권의 「등목취유취경원기」에도 비슷한 여인이 나온다. “芳華姓衛,故宋理宗朝宮人也。年二十三而歿,殯於此園之側。” '방화는 성이 위씨이고 옛 송나라 이종 때의 궁인이다. 스물셋에 죽어 이 정원 곁에 빈소를 두었다'는 뜻이다. 이야기의 무대는 송이 망한 지 40년 뒤, 누대가 모두 무너진 취경원이다. 두 편은 모두 여인의 나이와 죽은 뒤 머문 곳을 분명히 밝힌다는 점을 보여 준다.
「만복사저포기」 첫머리, 남원의 양생과 저포 내기
「만복사저포기」의 한문 원문은 위키문헌(維基文庫)의 『금오신화』 항목에서 읽을 수 있다. 작품은 이렇게 시작한다. “南原有梁生者,早喪父母,未有妻室,獨居萬福寺之東.” 우리말로 옮기면 '남원에 양생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일찍 부모를 여의고 아내가 없어 만복사 동쪽에 홀로 살았다'는 뜻이다.
첫 문장은 지명, 이름, 가족, 사는 곳을 차례로 밝힌다. 양생은 부모도 아내도 없는 사람으로 소개된다. 사는 곳이 절의 동쪽이라는 점도 적혀 있다. 이 설정은 내기가 부처 앞에서 벌어지는 것과 맞물린다고 볼 수 있다.
저포 내기 대목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日晩梵罷人稀,生袖摴蒲,擲於佛前曰: “吾今日,與佛欲鬪蒲戱,若我負,則設法筵以賽,若不負,則得美女,以遂我願耳.” 우리말로 옮기면 이렇다. '날이 저물어 법회가 끝나고 사람이 드물어지자, 양생은 소매에서 저포를 꺼내 부처 앞에 던지며 말했다.' '제가 오늘 부처님과 저포 놀이를 겨루려 합니다. 제가 지면 법회를 베풀어 갚고, 지지 않으면 미녀를 얻어 소원을 이루겠습니다.'
이 내기에서 양생은 부처를 공경의 대상이 아니라 놀이의 상대로 세운다고 볼 수 있다. 지면 법회를 열고, 이기면 미녀를 얻는다는 조건이다. 「만복사저포기」 항목은 이 대목을 이렇게 요약한다. “배필 없음을 슬퍼하던 중에 부처와 저포놀이 를 해 이긴 대가로 아름다운 처녀를 얻었다.” 위키문헌 본문은 놀이 이름을 '摴蒲'로, 사전의 제목은 '樗蒲'로 적어 글자가 조금 다르다. 이 차이는 판본과 표기를 함께 살펴야 함을 보여 준다.
「만복사저포기」 여인의 글과 『전등신화』와의 차이
「만복사저포기」 항목은 양생이 얻은 처녀의 사연을 이렇게 정리한다. “그 처녀는 왜구의 난 중에 부모와 이별하고 정절을 지키며 3년간 궁벽한 곳에 묻혀서 있다가 배필을 구하던 터였다.” 원문에서 한 여인은 부처께 글을 올린다.
이 구절을 우리말로 옮기면 이렇다. '지난날 변방의 방비가 무너져 왜구가 쳐들어왔습니다. 창과 방패가 눈에 가득하고 봉화가 해마다 올랐습니다. 집들을 불태우고 백성을 노략하니, 사람들이 동서로 달아나고 좌우로 숨었습니다.'
양생의 내기는 한 사람의 외로움에서 나온다. 여인의 글은 한 지역이 겪은 전란을 말한다. 사전 해설과 원문의 글은 모두 왜구의 침입을 배경에 둔다. 이 대목은 개인의 소원과 전란의 기억이 한 공간에 놓여 있음을 보여 준다고 읽을 수 있다. 「만복사저포기」 항목은 이 작품을 “산 남자와 죽은 여자의 사랑을 그린 애정소설이며, 구조 유형상 명혼소설(冥婚小說) 또는 시애소설(屍愛小說)이라고도 한다.”고 정리한다.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사랑을 다룬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전통 귀신의 갈래와 기원과 함께 읽을 수 있다.
두 나라의 작품을 항목별로 나란히 놓으면 다음과 같다. 시작 방식에서 「모란등기」는 연대로 열고, 「만복사저포기」는 지명으로 연다. 남자 주인공은 교생이 짝을 잃은 홀아비이고, 양생은 일찍 부모를 잃고 아내가 없는 사람이다. 여인의 사연에서 『전등신화』 두 편은 죽은 나이와 머문 곳을 밝히고, 「만복사저포기」 여인의 글은 왜구의 전란을 앞세운다. 전란에서 「등목취유취경원기」는 망한 왕조의 폐허를, 「만복사저포기」는 변방의 침입을 그린다. 이 대조는 비슷한 틀 안에서도 다른 점을 따로 읽어야 한다는 한국 사전의 판단을 뒷받침한다고 볼 수 있다.
| 문헌 | 간행·전래 | 이 글에서 쓰는 대목 | 다른 문헌과의 차이 |
|---|---|---|---|
| 『금오신화』 다롄도서관 소장 조선 간행본 | 명종 연간 간행으로 보임, 중국 다롄도서관 소장 | 권수면 하단의 '파평후학 윤춘년 편집' 문구 | 일본 간행본보다 앞선 조선 목판본으로, 1990년대 후반 국내에 알려짐 |
| 『금오신화』 1653년 일본 간행본 | 1653년(효종 4·조오 2) 일본 간행 | 오쓰카 가문 전래 자료를 대본으로 삼음 | 1884년 목판본이 이 판본을 중간함 |
| 『금오신화』 1884년 목판본 | 1884년 간행 | 1653년 일본 간행본을 중간함 | 앞선 일본 간행본을 바탕으로 한 후대 판본 |
| 김집 편찬 한문소설집 | 국내 필사본 | 「만복사저포기」 필사 | 「이생규장전」과 함께 필사됨 |
| 『전등신화』 | 1378년경 명나라 구우가 지음 | 권2 「모란등기」와 「등목취유취경원기」 | 『금오신화』와 유사성이 있으나 모두 영향의 결과로 볼 수는 없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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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본론에서 드러난 것은 『금오신화』의 본문이 장소와 판본이라는 두 축 위에 서 있다는 점이다. 경주 금오산은 집필 장소로 가장 유력하게 꼽히지만, 시기는 자료마다 한 해씩 다르게 적힌다. 책은 국내에서 실물이 끊겼다가 일본 간행본과 다롄도서관본으로 다시 나타났다. 「만복사저포기」 첫머리의 저포 내기와 여인의 글은 개인의 소원과 전란의 기억을 함께 담고 있다고 읽을 수 있다.
남은 질문도 있다. '갑집'이라는 기록이 가리키는 나머지 작품은 무엇이었을까. 명종 연간의 조선 간행본과 1653년 일본 간행본의 본문은 어디까지 같을까. 이 물음들은 작품을 읽는 일과 판본을 읽는 일이 떨어져 있지 않음을 보여 준다. 다음 부에서는 다른 작품으로 시야를 넓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