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답: 유교 왕실 사당의 탁월한 사례로 인정받았다

종묘(宗廟)는 1995년 12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등재기준 (iv)를 근거로 그 가치를 인정했다.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는 종묘를 유교 왕실 사당의 탁월한 사례로 설명한다. 이 글은 17부작 가운데 3부다.

등재 대상은 건물 몇 채에 그치지 않는다. 궁능유적본부에 따르면 종묘는 의례공간과 의례를 준비하는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건물 전체와 경관 요소를 포함하는 유산구역은 완충구역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 구성은 종묘를 건물 단위가 아니라 구역 단위로 보아야 한다는 점을 보여 준다.

국가유산포털이 적은 56,503평 경내, 정전 19실과 영녕전 16실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은 종묘 경내를 56,503평으로 적는다. 경내에는 정전(正殿)과 별묘인 영녕전(永寧殿)이 있다. 전사청(典祀廳), 재실(齋室), 향대청(香大廳), 공신당(功臣堂), 칠사당(七祀堂)도 함께 있다. 현재 정전에는 19실에 49위의 신위가 모셔져 있다. 영녕전에는 16실에 34위의 신위가 모셔져 있다.

사당이 둘로 나뉜 까닭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나온다. 이 사전은 한국학중앙연구원이 펴낸 백과사전이다. 사전에 따르면 공덕이 높아 세실(世室)로 모시기로 정한 왕이 있었다. 그 밖의 신주는 일정한 때가 지나면 조묘(祧廟)인 영녕전으로 옮겨 모셨다. 정전 건물은 현재 정면 19칸, 측면 3칸이고, 좌우 익실(翼室)이 각 3칸이다.

이 기록은 영녕전을 단순한 부속 건물이 아니라 신주를 옮겨 모시는 제도의 일부로 읽게 해 준다. 두 사당의 신위 수를 함께 보아야 종묘 전체의 규모가 드러난다고 볼 수 있다. 국가유산청은 종묘를 대한민국 최초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가운데 하나로 소개한다. 같은 연재의 석굴암과 불국사 편과 함께 읽으면 연재의 출발점이 한눈에 보인다.

넓은 박석 월대 뒤로 붉은 기둥이 길게 늘어선 종묘 건물
서울 종묘의 길게 이어진 제례 건물과 박석 깔린 월대 (2017년) · Mannaa mohamed · CC BY-SA 4.0 · 위키미디어 공용

등재기준 (iv)의 문구와 중국 태묘(太廟)와의 차이

궁능유적본부의 종묘 세계유산 안내는 등재기준 (iv)의 요건을 이렇게 적는다. "인류 역사에서 중요한 단계를 증명하는 건물 유형,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혹은 경관의 탁월한 사례여야 한다." 같은 안내는 종묘의 가치를 이렇게 정리한다. "종묘는 유교 왕실 사당의 탁월한 사례로 16세기 이후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 있으며, 전통적인 제례와 형태라는 무형유산의 중요한 요소가 지속되고 있다."

국가유산포털은 정전의 건평을 1,270㎡로 적는다. 포털은 정전을 동시대 단일 목조 건축물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로 추정한다. 이 설명을 기준 (iv)의 '건물 유형'과 나란히 놓을 수 있다. 그러면 종묘는 유교 사당이라는 한 건물 유형의 대표 사례로 읽힌다. 안내문이 제례를 함께 언급한 점은 건물과 의례가 이어져 있음을 보여 준다.

국가유산청 자료가 드는 비교 대상은 중국의 태묘다. 첫째, 태실의 수가 다르다. 국가유산포털은 중국 태묘의 태실을 9실로, 한국 종묘의 태실을 19칸으로 적는다. 둘째, 배치가 다르다. 국가유산청 글은 태묘를 다중 중정식 구성으로, 종묘를 단일 축선 위에 감실을 좌우로 길게 이은 구성으로 설명한다. 셋째, 태묘는 삼단석대 위 대전의 수직적 위계를, 종묘는 평평한 월대와 낮은 지붕 선의 수평적 장엄함을 드러낸다. 이 비교는 같은 유교 왕실 사당 안에서도 공간을 짜는 방식이 달랐음을 보여 준다.

흰 돌 기단 위에 선 겹지붕의 베이징 태묘 향전 정면
중국 베이징 태묘의 향전(전전) 정면 (2023년) · ScareCriterion12 · CC BY-SA 4.0 · 위키미디어 공용

1394년 착공에서 1836년 정전 19칸 완성까지

국가유산포털에 따르면 조선 왕조는 태조 3년(1394) 10월 한양으로 도읍을 옮겼다. 종묘는 그해 12월에 착공해 이듬해 9월에 완공되었다. 곧이어 개성에서 태조의 4대조 신주를 옮겨 모셨다. 4대조는 목조(穆祖), 익조(翼祖), 도조(度祖), 환조(桓祖)다. 처음 정전은 태실 7칸에 좌우로 딸린 방 2칸이었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종묘는 불에 탔다. 국가유산청 글은 그때의 사정을 이렇게 적는다. "다행히 신주는 백성의 집에 옮겨 보존했지만, 종묘를 재건하는 일은 곧 왕조의 명예를 회복하는 국가적 과업이 되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중건 논의는 1604년(선조 37)에 시작되었다. 종묘는 광해군이 즉위하던 해인 1608년 5월에 다시 지어졌다.

그다음 정전은 두 차례 늘어났다. 영조 대인 1726년에 정전이 4칸 늘어 15칸이 되었다. 헌종 대인 1836년에는 정전 19칸, 영녕전 16칸의 모습이 완성되었다. 이 기록은 오늘 보는 정전의 길이가 한 번에 설계된 것이 아님을 보여 준다. 정전의 긴 지붕은 여러 시대의 증축이 쌓인 모습으로 읽을 수 있다.

▶ 유튜브 작업 영상
국가유산청 Korea Heritage Service
미래를 향해 이어 나가는 전통, 종묘 정전 보수공사 완료 보고🗂️ 유튜브에서 작업 영상 바로보기 →

완충구역과 세운4구역, 1994년 ICOMOS 권고에서 2023년 조례 개정까지

궁능유적본부에 따르면 종묘 건물은 해체와 재건 등 여러 차례 복원 작업을 거쳤다. 안내는 이 점이 대부분의 동아시아 목조 건축물과 같다고 설명한다. 같은 안내는 완충구역 밖에서 도시화가 상당히 진행되었다고 적는다. 그곳에 고층 건물을 지으면 종묘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한다.

코리아헤럴드(The Korea Herald) 보도에 따르면 이 우려는 등재 신청 때부터 있었다. 유네스코 자문기구 ICOMOS는 1994년 10월에 주변 고층 건축을 허가하지 말라고 권고했다. 그런 건축이 세계유산 구역 안의 시야를 해칠 수 있다는 이유였다. 같은 보도에 따르면 서울시는 세운4구역 재개발 계획을 승인했다. 이때 청계천 쪽 최고 높이를 71.9m에서 141.9m로 높였다. 세운4구역은 종묘에서 약 180m 떨어져 있다.

서울시의회는 2023년 문화유산 보호 조례를 개정했다. 이 개정으로 100m 보존지역 밖 건축에 대한 유산영향 검토 조항이 삭제되었다. 대법원은 이 개정이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국가유산청 글은 최근 세계유산위원회가 도시 고층 개발에 대해 유산영향평가를 요구한다고 적는다. 이 자료들은 기준 (iv)의 '경관'이라는 말이 오늘의 도시 계획 문제와 맞닿아 있음을 보여 준다.

종묘 정전·영녕전과 중국 태묘를 국가유산청 자료와 백과사전의 같은 기준으로 나란히 놓은 표
비교 대상태실 규모공간 구성의 특징근거 자료
종묘 정전태실 19칸(헌종 대 1836년 완성)단일 축선 위에 감실을 좌우로 길게 잇고 넓고 평평한 월대를 둔 수평적 구성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종묘 영녕전16실(헌종 대 1836년 16칸 완성)기단·처마·지붕 높이와 기둥 굵기를 정전과 위계에 따라 달리함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중국 태묘태실 9실다중 중정식 구성으로 삼단석대 위에 대전을 올린 수직적 위계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공중보행로로 이어진 세운상가 건물 전경
서울 종로의 세운상가 건물과 공중보행로 (2022년) · MaRail · CC BY-SA 4.0 · 위키미디어 공용
▶ 유튜브 작업 영상
국가유산청 Korea Heritage Service
[live] 종묘 정전 환안제 및 준공기념식 행사를 함께해요!ㅣ2025.4.20.(일) 유튜브에서 작업 영상 바로보기 →

정리: 월대와 영녕전 뒷벽에서 다시 보는 등재 가치

종묘에서는 먼저 정전 정문 안쪽의 월대(月臺)를 보면 좋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월대를 장대석으로 쌓고 윗면에 박석(薄石)을 깔았다고 적는다. 어도(御道)는 정문에서 정전 기단 중앙 계단까지 이어지고, 바닥에 전(塼)을 깔았다. 월대 곳곳에는 차일(遮日)고리가 박혀 있다. 앞서 본 '수평적 장엄함'은 이 넓고 평평한 바닥에서 직접 느낄 수 있다.

그다음 영녕전에서 정전과 높이를 견주어 볼 만하다. 국가유산포털은 두 건물의 기단, 처마, 지붕 높이와 기둥 굵기를 위계에 따라 달리했다고 적는다. 영녕전 뒷벽에서는 힘을 받는 기둥 부분과 단순한 벽체 부분을 나눈 수법도 볼 수 있다. 남은 질문은 담장 밖 경관을 어떤 기준으로 함께 지킬 것인가이다. 원문은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궁능유적본부 누리집,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직접 읽을 수 있다.

박석 깔린 넓은 월대 앞에 선 종묘 영녕전 건물
서울 종묘 영녕전과 월대 (2024년 8월) · Immanuelle · CC BY 4.0 · 위키미디어 공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