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답 — 판소리는 목을 쓰는 법과 판을 꾸리는 법이 다르다
판소리 소리꾼은 배의 힘으로 소리를 밀어내는 통성을 기본으로 쓴다. 무대에는 소리꾼 한 명과 고수 한 명이 오르고, 관객도 추임새로 공연에 참여한다. 유네스코(UNESCO)는 판소리를 소리꾼과 고수가 공연하는 음악적 이야기 장르로 정의한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판소리는 17세기 한국 남서부에서 생겨났다. 유네스코는 판소리가 무당의 서사무가에서 나온 새 표현 형식이었을 가능성도 적는다.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의 영문 웹진은 용어가 처음 등장한 문헌을 따로 짚는다. 그 문헌은 『조선창극사』(Joseon changgeuk sa)이며, 정노식이 써서 1940년 조선일보사에서 펴냈다. 같은 웹진은 한국 정부가 1964년 12월 24일 판소리를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했다고 적는다.
통성과 수리성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2006년 성대 연구로 본 발성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한국학중앙연구원이 펴낸 백과사전이다. 이 사전은 판소리 발성이 기본적으로 통성을 쓴다고 설명한다. 통성은 배(단전)로 호흡하고 단전의 힘으로 소리를 밀어내는 방식이다. 사전에 따르면 성대를 단련하면 처음에는 탁하고 거친 음색이 나온다. 그러나 결국 탁한 가운데 힘 있고 맑은 소리를 얻게 된다.
사전은 발성을 다루는 부분에서 좋은 목의 하나를 이렇게 풀이한다. "수리성은 탁한 음색 가운데 맑은 소리가 힘 있게 뻗어 나오는 소리를 말하며, 철성은 쇳소리와 비슷한 강한 음색이 끼어 있는 것을 말한다." 사전은 이렇게 단련한 목 덕분에 소리꾼이 혼자 부르면서도 음색을 바꿀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소리꾼 한 사람이 여러 인물의 성격과 희로애락을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이다.
교보문고 스콜라에 실린 2006년 국내 논문은 성악가 29명과 소리꾼 16명을 후두 내시경과 CSL로 측정했다. 첫째, 성악가는 2,600~3,500Hz 대역에 음악 포먼트를 형성했지만 소리꾼에게서는 대부분 나타나지 않았다. 둘째, 비브라토는 성악가가 1초에 5.5~6회, 소리꾼이 4~5.5회 떨렸다. 셋째, 비브라토의 음높이 변동 폭은 성악가가 3.8~11.0Hz, 소리꾼이 7.2~46.0Hz였다. 넷째, 소리꾼의 성대는 서양 성악가의 대칭적 성대와 달리 비대칭적이었다. 필자는 이 결과를 두 전통이 서로 다른 소리를 목표로 훈련한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고 본다.
소리·아니리·발림과 추임새 — 국가기록원이 설명하는 판의 구성과 조
ISDP(Institute for Security and Development Policy)는 스웨덴의 연구소다. ISDP의 해설 글은 소리꾼(광대) 한 명이 보통 서서 말과 노래로 이야기를 공연한다고 설명한다. 고수는 앉아서 북으로 반주한다. 국가기록원은 노래를 '소리', 말을 '아니리', 몸짓을 '발림'이라 부른다고 적는다.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아니리를 할 때 고수는 북을 치지 않는다.
고수는 적당한 대목에서 "얼씨구 좋다!"나 "으이 좋지!"라고 소리친다. 국가기록원은 이를 '추임새 넣는다'고 부른다. 국가기록원은 소리꾼이 관객을 웃기고 울리면 관객도 함께 추임새를 넣는다고 설명한다. 이 구조는 청중이 소리로 공연에 끼어드는 방식으로 볼 수 있다. 고수의 북 반주인 고법은 1978년 따로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그다음 1991년 판소리 종목에 통합되었다고 문화재청 영문 웹진은 적는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조선 말기 판소리는 가곡의 조이름인 우조와 계면조를 빌려 썼다. 가곡·풍류와 비슷한 선율은 우조, 육자배기·남도무가·시나위와 비슷한 선율은 계면조라 불렀다. 사전은 판소리의 우조가 장중하고 꿋꿋한 느낌을 준다고 설명한다. 장단에 따라 주가 되는 조도 달라진다. 중모리와 중중모리에서는 평조대목이, 자진모리에서는 우조대목이 주가 된다. 다른 장단의 성격은 이 글이 참고한 자료로는 확인되지 않는다.
다섯 바탕과 눈대목 — 춘향가·심청가·흥보가·수궁가·적벽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현재 전승되는 다섯 바탕은 춘향가·심청가·흥보가·수궁가·적벽가다. 주제는 차례로 정절·효·권선징악·지혜와 충성·용맹이다. 심청가는 심청이 공양미 300석에 인당수(印塘水) 제물로 팔리는 이야기다. 심청은 용왕의 도움으로 환생해 황후가 되고, 아버지와 다시 만나 그 눈을 뜨게 한다. ISDP는 다섯 바탕 가운데 하나가 중국 이야기에서 왔다고 설명한다. 그 뿌리는 14세기 소설 『삼국지연의』(Sanguo yanyi)의 '적벽대전'이다.
사전이 꼽는 춘향가의 눈대목에는 사랑가·이별가·십장가·옥중가·어사출도 등이 있다. 흥보가에는 놀보심술·가난타령·제비노정기·흥보박타령 등이 있다. 수궁가에는 토끼화상·고고천변·범 내려온다 등이 있다. 적벽가에는 삼고초려·군사설움타령·적벽강 싸움·새타령 등이 있다. 사전의 다른 항목은 춘향가 적성가 첫대목과 적벽가 삼고초려 첫대목을 우조대목의 예로 든다. 심청가의 대표 눈대목은 이 글이 참고한 자료로는 확인되지 않는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판소리는 19세기 후반까지 서민들 사이에서 구전으로 전해졌다. 유네스코는 판소리 공연이 최대 8시간까지 이어진다고 설명한다. 소리꾼은 북 하나의 반주에 맞춰 서민의 말과 식자층의 문학 표현이 섞인 사설을 즉흥으로 풀어 간다. 국가기록원은 박동진의 완창 발표를 기록한다. 박동진은 1969년 춘향가를 8시간 동안 불렀다. 그다음 1970년 심청가 6시간, 1971년 적벽가 5시간과 수궁가 4시간 완창을 이어 갔다.
열두 마당에서 세 유파까지 — 국가기록원·문화재청 웹진이 전하는 갈래와 계면조의 슬픔
국가기록원은 18세기 중엽에 열두 마당이 있었다고 적는다. 그 목록에는 다섯 바탕 외에 변강쇠타령·배비장타령·옹고집타령·무숙이타령·장끼타령·가짜신선타령이 들어 있다. 국가기록원은 강릉매화가·변강쇠타령처럼 서민적 재담이 많은 작품이 도태되었다고 설명한다. 신재효(1812~1884)는 열두 마당을 30년에 걸쳐 여섯 마당으로 다시 정리했다. 신재효는 성조가(成造歌)·광대가·도리화가 같은 창작 단가도 지어 『신오위장본』으로 묶었다. 구한말에는 원각사(圓覺社)가 생기면서 판소리를 변형한 창극이 성행했다.
국가기록원은 섬진강을 기준으로 유파를 나눈다. 동쪽인 구례·남원 등의 소리는 동편제(東便制), 서쪽인 보성·광주·나주 등의 소리는 서편제(西便制)다. 경기도와 충청도의 소리는 중고제(中古制)라 한다. 문화재청 영문 웹진은 동편제에 단순하고 힘찬 선율과 깊은 울림이 있다고 쓴다. 같은 웹진은 서편제에 긴 떨림과 섬세한 꾸밈음이 있고, 중고제는 동편제에 가깝다고 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동편제가 우조를, 서편제가 계면조를 잘 표현했던 것으로 본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판소리에서 계면조의 '슬픈 감정'이 사설을 사실적으로 표현한다고 설명한다. 사전은 슬픔의 정도에 따라 진계면·단계면·평계면으로 나누는 분류도 소개한다. 『성호사설』을 쓴 이익(李瀷)은 듣는 이의 눈물이 얼굴에 금을 그어 '계면'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풀었다. 명창 김연수는 '원(怨)은 애동비절한 감을 나타내는 창법이니 이가 곧 계면조'라고 하였다. ISDP는 1993년 임권택 감독의 영화 「서편제」 전체에 한(恨)이 스며 있다고 쓴다. 이 자료들은 슬픔을 판소리 정서의 한 축으로 설명한다고 볼 수 있다.
| 비교 대상 | 소리의 성격 | 음향·선율 특징 | 근거 자료 |
|---|---|---|---|
| 판소리 소리꾼 | 통성, 탁한 가운데 힘 있는 수리성 | 음악 포먼트 대부분 없음, 비브라토 초당 4~5.5회, 변동 폭 7.2~46.0Hz, 성대 비대칭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006년 논문 |
| 서양 성악가 | 확인 안 됨 | 2,600~3,500Hz 음악 포먼트, 비브라토 초당 5.5~6회, 변동 폭 3.8~11.0Hz, 성대 대칭 | 2006년 논문 |
| 동편제 | 힘 있고 남성적인 소리, 우조를 잘 표현 | 섬진강 동쪽(구례·남원 등), 단순하고 힘찬 선율, 깊은 울림 | 국가기록원, 문화재청 웹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 서편제 | 부드럽고 애절한 소리, 계면조를 잘 표현 | 섬진강 서쪽(보성·광주·나주 등), 긴 떨림, 섬세한 꾸밈음 | 국가기록원, 문화재청 웹진, ISDP |
| 중고제 | 더 선율적인 소리 | 경기·충청, 동편제에 가깝지만 꾸밈음이 단순 | 국가기록원, 문화재청 웹진, ISDP |
정리
앞서 본 자료들은 판소리의 정서를 슬픔 하나로만 그리지 않는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판소리가 본래 서민들 사이에서 풍자와 해학을 바탕으로 향유되었다고 설명한다. 문화재청 영문 웹진은 판소리가 노래와 몸짓으로 민중의 기쁨과 슬픔을 사실적으로 그린다고 쓴다. 웃음과 눈물이 함께 있다는 점은 관객이 추임새로 반응하는 판의 구조와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신명'이 판소리에서 어떤 자리를 갖는지는 이 글이 참고한 자료로는 확인되지 않는다.
기록의 표기에도 살펴볼 점이 있다. 국가기록원과 문화재청 영문 웹진은 2003년 11월 7일의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 선정을 적는다. 유네스코 누리집은 2008년 제3차 위원회(3.COM)에서 대표목록에 올랐고 처음 선정은 2003년이라고 표기한다. 유네스코는 보존 과정에서 문자 사설이 늘며 즉흥성이 억눌리는 경향도 지적한다. 원문은 유네스코 무형유산 누리집,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국가기록원 누리집에서 직접 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