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답, 무명은 목화에서 실을 뽑아 짠 사계절 옷감이자 돈이었다

무명은 목화에서 뽑은 실로 짠 우리나라 토속 면직물이다. 조선에서 무명은 사계절 옷감이었고, 거래에서는 돈 구실도 했다. 만드는 순서는 이렇다. 먼저 씨아로 목화의 씨를 빼고, 그다음 물레로 실을 뽑고, 마지막으로 베틀로 짰다. 이 글은 7부작 가운데 3부다.

조선시대 문헌은 면직물을 면포(綿布) 또는 목(木)으로 적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무명을 광목(廣木)·옥양목(玉洋木)·서양목과 구별되는 토속 직물로 설명한다. 이 글에서는 옷감을 가리킬 때 '무명'이라고 쓴다. 거래와 세금 이야기에서는 문헌 표기를 따라 '면포'라고 쓴다. 이렇게 나눠 두면 같은 천이 옷과 화폐라는 두 기록에 함께 등장한다는 점을 알아보기 쉽다.

산청 목면시배 유지의 목화밭을 설명하기 위한 AI 재현 이미지
AI로 재현한 일러스트 · 실제 사진 아님 — 산청 목면시배 유지의 목화밭을 설명하기 위한 개념 이미지

1363년 목화씨와 씨아·물레,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문익점' 항목

한국학중앙연구원이 펴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목화가 들어온 과정을 문익점의 행적으로 기록한다. 문익점은 고려 공민왕 때 서장관으로 원나라에 다녀온 인물이다. 이 사전의 '문익점' 항목은 그 장면을 이렇게 적는다. "1363년(공민왕 12) 서장관으로 원나라에 갔다가 귀국할 때 몰래 목화씨 종자를 붓대 속에 넣어 가지고 돌아왔다."

처음에는 재배 기술을 몰라 한 그루만 겨우 살렸다. 그다음 3년간 노력한 끝에 재배에 성공했고, 목화씨는 전국에 퍼졌다. 이 시험 재배에는 정천익이 함께했다. 정천익의 집에는 원나라 승려 홍원(弘願)이 머물고 있었다. 사전은 이들이 홍원에게서 씨아와 물레 만드는 법을 배웠다고 적는다. 씨아는 토막나무에 기둥 두 개를 박고, 그 사이에 맞물린 둥근 나무 두 개를 끼운 기구다.

씨아를 쓰면 여자 한 사람이 하루에 목화 두 말의 씨를 뺐다. 『북학의』에는 씨아가 각차(攪車)라는 이름으로 적혀 있다. 물레는 실을 뽑는 기구다. 물레노래는 삼삼기노래·베틀노래와 함께 길쌈노래에 속하는 여성 노동요다. 이 기록에서는 목화씨와 도구 만드는 법이 한 이야기 안에 함께 나온다. 씨앗만으로는 옷감이 되지 않았고 도구가 같이 있어야 했다는 점을 보여 준다.

나무로 만든 전통 씨아 유물을 설명하기 위한 AI 재현 이미지
AI로 재현한 일러스트 · 실제 사진 아님 — 나무로 만든 전통 씨아 유물을 설명하기 위한 개념 이미지

답목직기와 일곱 새 무명, 한·중·일 베틀 기록 비교

실이 준비되면 베틀로 천을 짠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답목직기(踏木織機)를 수직기(手織機)의 일종으로 설명한다. 사람이 베틀의 답목을 발로 밟아 동력을 일으키는 방식이다. 이 베틀은 발끈을 당겼다 놓았다 하며 개구운동을 하는 포기(布機)와 원리가 다르다. 무명은 너비 32∼36cm(7촌) 안팎, 한 필 길이 20m(40척) 안팎이었다. 품질은 승수, 곧 '새'로 가렸고, 보통 일곱 새 정도가 튼튼하고 실용적이어서 생활복에 많이 쓰였다.

같은 사전의 기록을 나라별로 나누면 다음과 같다. 쓰임에서는 한국·중국·일본 모두 답목직기로 견직물과 면직물을 짰다. 쓰지 않은 곳도 세 나라가 같아서, 인피섬유 직물을 짜는 데는 답목직기를 쓰지 않았다. 전파에서는 조선 태종 때 우리 무명이 일본으로 수출되었다. 이때 면 종자와 제직 기술도 일본에 전해졌다.

이 정리는 '베틀'을 하나의 도구로 뭉뚱그리지 않게 해 준다. 같은 베틀이라도 섬유 종류에 따라 쓰임이 갈렸다고 읽을 수 있다. 또 무명과 짜는 기술이 일본으로 건너간 기록은 무명을 한 나라 안의 생활 옷감으로만 보지 않게 해 준다.

날실이 걸린 나무 베틀과 짜다 만 천이 놓인 모습
러시아 토르조크 민속센터에 전시된 나무 베틀 · Лапоть · CC0 · 위키미디어 공용

사계절 옷감이자 기준통화, 고려 후기 5승포에서 조선 후기 군역전까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무명을 춘하추동 의복과 침구, 생활용품 재료로 가장 많이 쓰인 직물로 설명한다. 겨울옷은 솜을 두어 겹으로 짓고, 봄·가을옷은 겹으로, 여름옷은 홑으로 지었다. 국립민속박물관 연구원 김영재는 Korea JoongAng Daily 기사에서 삼베와 모시는 여름 옷감이고 면과 비단은 비쌌다고 말했다. 모시 섬유는 모시풀 껍질을 이로 벗겨 가는 가닥으로 만든다. 여름 옷감으로 함께 묶인 삼베는 삼베 편에서 다뤘다. 두 자료를 나란히 보면 무명을 흔하고 값싼 옷감으로만 이해하기는 어렵다고 볼 수 있다.

옷감은 돈 구실도 했다. 교보문고 스콜라에 실린 한 학술 논문은 고려 후기에 5승포가 국가재정과 민간 교환의 기준통화였다고 본다. 조선 초 태종·세종 때에는 저화(楮貨)와 동전 보급 정책을 강력히 추진했지만 실패했다. 세종조 전후에는 면작이 퍼지던 흐름과 함께 면포가 상포를 대신해 새 기준통화로 기능했다. 15세기 중반 이후에는 도성시장에 나타난 거친 면포, 곧 추포(麤布)가 새롭게 기준통화 역할을 했다.

천은 나라에 내는 부담과도 이어졌다. 조선 후기 지방에서는 군포(軍布)를 공동으로 내려고 군역전(軍役田)이라는 전답을 마련했다. 군역전은 19세기 초반 관서지방을 중심으로 한 북부지방에서 나타나 삼남지방으로 퍼졌다. 이 전답은 한말까지 이어지다가 갑오개혁 이후 공토·역둔토로 흡수되었다. 옷감 이야기가 화폐와 세금 기록으로 이어진다는 점은 무명을 생활사와 경제사에서 함께 읽어야 하는 까닭으로 볼 수 있다.

1969년 국가무형문화재 제28호 '나주의 샛골나이'와 산청 목면시배 유지

나주의 샛골나이는 전남 나주시 다시면 동당리 일원에서 짜는 전래의 고운 무명베를 가리킨다.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은 이 종목의 영문 명칭을 'Naju Saetgollai (Cotton Weaving of Naju)'로 적는다.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 보도자료는 이름의 뜻을 이렇게 풀이한다. "샛골은 동당리 마을을 가리키는 것이고, 나이는 길쌈을 뜻하는 말이다."

1969년 7월 4일, 당시 문화재관리국은 사라져 가던 재래식 무명짜기를 전승하려고 이 종목을 국가무형문화재 제28호로 지정했다. 이때 김만애가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그다음 1990년 10월 10일에는 재래방식 무명짜기를 유일하게 전승하던 노진남이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노진남은 김홍남(당시 전수교육조교) 등에게 무명짜기 기술을 전수했다.

목화 재배가 처음 시작된 자리도 남아 있다. 문익점과 정천익이 처음 목화를 시험 재배한 곳은 경남 산청군 단성면 사월리다. 이곳의 산청 목면시배 유지는 1963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원문은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과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누리집에서 직접 읽을 수 있다. 지정 기록에 마을 이름과 보유자 이름이 함께 남는 점은 무명짜기가 장소와 사람을 통해 이어지는 기술임을 보여 준다.

무명과 나주의 샛골나이, 모시, 비단을 원료·계절·만들기 기록으로 나란히 본 표
비교 대상원료·섬유계절·쓰임만들기·짜기 기록
무명목화(1363년 문익점이 들여온 목화씨가 전국에 퍼짐)사계절 의복·침구·생활용품, 겨울옷은 솜을 둔 겹옷씨아로 씨를 빼고 물레로 실을 뽑아 답목직기로 짬, 일곱 새가 생활복에 많이 쓰임
나주의 샛골나이목화로 짠 무명베나주시 다시면 동당리 일원의 전래 고운 무명베재래식 무명짜기, 1969년 국가무형문화재 제28호 지정
모시모시풀여름 옷감(국립민속박물관 연구원 김영재)모시풀 껍질을 이로 벗겨 가는 가닥을 만듦
비단(견직물)견(絹)비싼 옷감(국립민속박물관 연구원 김영재)한국·중국·일본에서 답목직기로 짬
발로 밟는 전통 베틀과 무명을 설명하기 위한 AI 재현 이미지
AI로 재현한 일러스트 · 실제 사진 아님 — 발로 밟는 전통 베틀과 무명을 설명하기 위한 개념 이미지

정리

무명의 기록은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씨앗과 도구의 기록, 옷과 계절의 기록, 화폐와 세금의 기록이다. 이 세 갈래는 서로 다른 사전 항목과 논문, 보도자료에 흩어져 있다. 그래서 한 자료만 읽으면 무명의 한쪽 면만 보게 된다.

남은 질문도 있다. 생활복에 많이 쓰인 일곱 새 무명과 '고운 무명베'로 불리는 샛골나이는 옷감으로서 어떻게 다를까. 시장에서 돈 구실을 한 추포는 실제로 어떤 천이었을까. 박물관에서 씨아를 볼 때는 앞서 본 '하루 두 말' 기록을 떠올려 보면 좋다. 도구의 크기와 하루 일의 양을 함께 가늠할 수 있다.

줄기 끝에서 벌어진 목화 열매 속 하얀 솜뭉치
인도 카르나타카주 라이추르의 다 익어 벌어진 목화 열매 · Nanditha Gogate, WELL Labs · CC BY-SA 4.0 · 위키미디어 공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