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답

간보(干寶)는 『수신기』(搜神記)를 사관의 손으로 엮었다. 『진서』(晉書) 권82의 간보전은 그를 국사를 맡은 저작랑으로 적는다. 「수신기 서」는 이야기를 늘어놓기 전에 자료의 출처와 책임의 범위를 밝힌다. 이 글은 간보의 이력, 서문의 선언, 전해지는 판본, 권1의 서술 형식만 다룬다. 이 글은 3부작 가운데 1부다.

『진서』 권82는 간보의 집안에서 일어난 두 가지 일을 기록한다. 하나는 부친의 시비가 무덤에서 발견되어 집으로 옮겨진 뒤 소생했다고 전하는 일이다. 다른 하나는 형이 숨이 끊어졌다가 깨어난 일이다. 『진서』는 이 일을 계기로 간보가 고금의 신이한 일을 모아 『수신기』를 엮었다고 연결한다. 이는 전기에 전하는 저술 경위이지, 소생 이야기가 실제로 일어났음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읽는 『수신기』는 간보가 쓴 그대로가 아니다. 중문 위키백과는 원래 30권이었으나 전하는 것은 집본 20권이라고 적는다. 전해지는 판본은 20권본과 8권본으로 갈라져 있다. 권1의 신선 이야기는 인물을 먼저 규정하고 행적을 적는 짧은 형식을 보여 준다.

『진서』 권82 간보전이 적는 이력

『진서』 권82의 간보전은 이름과 자, 출신지, 가계를 먼저 적는다. 첫 구절은 이렇다. “干寶,字令升,新蔡人也。祖統,吳奮武將軍、都亭侯。父瑩,丹陽丞。” 이 구절은 간보의 자가 영승(令升)이고 출신지가 신채(新蔡)라고 밝힌다. 조부 간통은 오의 분무장군과 도정후였고, 부친 간영은 단양승이었다고 적는다. 열전은 인물의 성격보다 집안의 관직을 먼저 세워 둔다.

다음 구절은 학문과 등용을 적는다. “寶少勤學,博覽書記,以才器召為著作郎。平杜弢有功,賜爵關內侯。” 이 기록은 그가 어려서부터 학문에 부지런했고 서기를 널리 읽었다고 밝힌다. 등용의 이유로는 '재기'를 든다. 두도 토벌의 공으로 관내후 작위를 받았다고도 적는다. 학문과 군공이 한 문장 안에 나란히 놓인 셈이다.

국사를 맡은 대목도 같은 전에 있다. “元帝納焉。寶於是始領國史。以家貧,求補山陰令,遷始安太守。” 원제가 왕도의 상소를 받아들였고, 간보가 국사를 맡기 시작했다는 서술이다. 그는 집이 가난해 산음령을 거쳐 시안태수로 옮겼다고 기록된다. 전은 그의 경력을 관직의 이동으로만 적는다.

그가 올린 역사서에 대한 평도 같은 전에 실려 있다. “自宣帝迄於湣帝五十三年,凡二十卷,奏之。其書簡略,直而能婉,咸稱良史。” 선제부터 민제까지 53년을 다룬 20권이며, 간략하고 곧으면서도 완곡해 양사로 불렸다는 평이다. 고토뱅크(コトバンク)의 사전 항목들은 그가 재기를 인정받아 저작랑이 되었고 관직은 산기상시까지 올랐다고 적는다.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은 그의 저작으로 『진기』(晉紀) 20권과 신이소설 『수신기』 20권을 들고, 생몰년은 미상이라고 밝힌다.

오래된 한문 책을 쌓아 둔 책상을 설명하기 위한 AI 재현 이미지
AI로 재현한 일러스트 · 실제 사진 아님 — 오래된 한문 책을 쌓아 둔 책상을 설명하기 위한 개념 이미지

부친의 시비와 형의 소생 이야기

같은 전은 간보의 집안에서 일어난 일도 적는다. “寶父先有所寵侍婢,母甚妒忌,及父亡,母乃生推婢於墓中。” 부친이 총애한 시비가 있었고 모친의 질투가 심했다는 서술이다. 부친이 죽은 뒤 모친이 그 시비를 산 채로 무덤에 밀어 넣었다고 적는다. 전은 이 일을 짧은 문장으로만 전한다.

뒷일을 적는 구절은 이렇다. “後十餘年,母喪,開墓,而婢伏棺如生,載還,經日乃蘇。” 십여 년 뒤 모친상으로 무덤을 열었다고 적는다. 시비는 관 위에 산 사람처럼 엎드려 있었고, 집으로 옮긴 뒤 며칠이 지나 되살아났다는 기록이다.

형에 대한 기록도 뒤따른다. “又寶兄嘗病氣絕,積日不冷,後遂悟,雲見天地間鬼神事,如夢覺,不自知死。” 형이 병으로 숨이 끊어졌으나 여러 날 몸이 식지 않았다고 적는다. 깨어난 뒤에는 천지간 귀신의 일을 보았다고 말했다는 서술이다. 전은 그 말을 평가하지 않고 그대로 옮긴다.

사전과 백과는 이 두 일을 저술의 계기로 정리한다. 중문 위키백과는 십 년 뒤 모친을 합장하려고 관을 열었을 때 부친의 첩이 시신 위에 엎드려 있었고 체온이 남아 있었다고 적는다. 같은 글은 구조 후 그가 몇 해를 더 살았다고 적고, 형이 '기절수일' 뒤 되살아난 일까지 겹쳐 간보가 귀신의 일에 관심을 가졌다고 설명한다. 고토뱅크의 사전 항목도 두 사람이 모두 명계의 모습을 이야기한 데 감응해 책이 저술되었다고 전한다. 다만 『진서』의 서술과 백과의 정리는 햇수와 뒷일을 다르게 적는다. 어느 쪽이 더 이른 기록을 따랐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유담의 평과 「수신기 서」의 책임 선언

『진서』 권82는 책이 엮어진 뒤의 장면도 적는다. “以示劉惔,惔曰:「卿可謂鬼之董狐。」寶既博采異同,遂混虛實,因作序以陳其志曰” 간보가 책을 유담(劉惔)에게 보였고, 유담은 그를 귀신의 동호(董狐)라고 불렀다는 기록이다. 전은 간보가 이동(異同)을 널리 모아 허실이 섞였다고 적는다. 그래서 서를 지어 자기 뜻을 밝혔다고 이어진다. 서문이 왜 필요했는지가 이 한 문장에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수신기 서」는 집필의 시점과 자료의 출처를 함께 적는다. “建武中,有所感起,是用發憤焉。雖考先志於載籍,收遺逸於當時” 건무 연간에 느낀 바가 있어 분발했다는 서술이다. 전적에서 선인의 기록을 살피고, 당대에 흩어진 이야기를 모았다고 밝힌다. 서문은 자료를 두 갈래로 나누어 적는 셈이다.

서문은 기록이 엇갈리는 사례도 든다. “衛朔失國,二傳互其所聞;呂望事周,子長存其兩說。” 위 삭의 실국 기사와 여망이 주를 섬긴 기사를 들어, 같은 일도 전승마다 들은 바가 다르다고 지적한다. 서문에는 책임의 범위를 가리키는 구절도 있다. “今之所集,設有承於前載者,則非余之罪也。” 앞선 기록을 이어받은 것이라면 그 오류는 자기 죄가 아니라는 선언이다. 같은 서문은 이런 구절도 남긴다. “若使采訪近世之事,苟有虛錯,願與先賢前儒,分其譏謗。”

이 두 구절은 자료의 출처에 따라 책임을 나누는 방식으로 읽을 수 있다. 고토뱅크의 사전 항목은 간보가 초자연적 섭리가 허망하지 않음을 밝히려는 의도로 『수신기』를 저술했다고 평가한다. 같은 사전은 그가 음양술수를 좋아하고 역에 관심을 두어 『주역주』와 『춘추좌씨함전의』, 『주관례주』를 남겼다고 적는다. 『진서』에 인용된 서문에는 “亦足以明神道之不誣也”라는 구절이 있어, 신도의 일이 허망하지 않음을 밝히려는 뜻도 직접 확인된다. 전승의 오류 가능성을 인정하는 태도와 신이한 세계에 대한 믿음이 함께 드러나는 대목이다.

비 그친 새벽 산길의 안개를 설명하기 위한 AI 재현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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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권에서 집본 20권으로 줄어든 전승

지금 전하는 『수신기』는 분량이 줄어든 책이다. 중문 위키백과는 간보가 원래 쓴 『수신기』가 30권이었다고 적는다. 같은 글은 현재 전하는 것이 집본 20권이며 464편의 이야기라고 밝힌다. 원서는 송과 원 사이에 이미 산일된 것으로 보인다고도 서술한다.

편명도 온전히 남지 않았다. 중문 위키백과는 『수신기』가 오래 전에 일실되어 편명을 알 수 없다고 적는다. 고증할 수 있는 것은 〈신화〉와 〈감응〉, 〈요괴〉, 〈변화〉 네 편이라고 밝힌다. 네 편의 이름만 남았다는 사실은 원래의 분류를 복원하기 어렵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판본은 하나가 아니다. 고토뱅크에 실린 사전 항목들은 『수신기』를 동진 간보가 편찬한 육조 지괴소설집으로 소개하며 20권본과 8권본이 전한다고 적는다. 같은 자료는 원본이 산일되어 현행본은 유서들에 인용된 것을 모은 책이라고 설명한다. 마이페디아는 원서가 일단 없어졌고 현존 20권에 신선과 방사, 이물이문, 요괴에 관한 470편의 설화가 실렸다고 적는다. 브리태니커는 원래 30권이라고 기록되지만 지금 전하는 20권본과 8권본은 계통이 다르며 원래 모습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편수는 자료마다 다르게 적혀 있다. 중문 위키백과는 464편, 마이페디아는 470편을 든다. 어느 숫자가 어떤 집본을 센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아래 표는 두 판본에 대해 근거 자료가 적는 범위만 나란히 정리한 것이다.

만력 연간 간행본과 호진형의 『수신기인』

현존 텍스트의 연대는 사전에 적혀 있다. 고토뱅크의 사전 항목은 현존 『수신기』 텍스트가 명 만력 연간(万暦年間, 1573~1619)에 간행된 것이라고 밝힌다. 브리태니커는 지금 전하는 두 판본이 계통이 다르다고 설명한다. 두 설명을 함께 놓으면, 독자가 손에 쥔 20권은 명대의 간행을 거친 책이라고 볼 수 있다.

중문 위키백과는 호진형이 『수신기인』(搜神記引)에 적은 말을 인용한다. “余得《搜神記》及《搜神後記》讀之,乃知晉德不勝怪而底於亡也。” 그가 두 책을 읽고 진의 덕이 괴이를 이기지 못해 망함에 이르렀음을 알았다고 적은 것이다. 이 구절은 한 독자가 『수신기』를 왕조의 운수와 함께 읽었음을 보여 준다. 다른 독자들이 어떻게 읽었는지는 이 구절만으로 알 수 없다.

책의 성격에 대한 평가도 같은 백과에 실려 있다. 중문 위키백과는 오늘날 『수신기』가 중국 지괴소설의 비조로 취급된다고 적는다. 같은 글은 당시 간보가 사가의 태도로 진지하게 썼고 독자도 사서를 읽는 태도로 읽었다고 평가한다. 이 평가는 백과의 서술이며, 당대 독자의 반응을 직접 보여 주는 기록은 이번 자료에 없다.

원문은 공개된 데이터베이스에서 직접 읽을 수 있다. 중문 위키문헌(維基文庫)에는 '晉書/卷082'와 '搜神記/序', '搜神記/第01卷'이 올라와 있다. 간보와 『수신기』에 대한 사전 항목은 일본의 고토뱅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베틀에 걸린 흰 비단 날실을 설명하기 위한 AI 재현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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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1의 신농과 적송자, 팽조를 적는 형식

권1의 첫 서술은 신농(神農)을 다룬다. “神農以赭鞭鞭百草,盡知其平毒寒溫之性,臭味所主,以播百穀,故天下號神農也。” 신농이 자편으로 백초를 때려 그 성질과 맛을 모두 알고 백곡을 파종했다는 서술이다. 마지막 구절은 그래서 천하가 그를 신농이라 불렀다고 맺는다. 호칭의 유래를 행적으로 설명하는 짜임이다.

적송자(赤松子)를 적는 구절은 더 짧다. “赤松子者,神農時雨師也,服水玉以教神農,能入火自燒。” 먼저 그가 신농 때의 우사라고 규정한다. 같은 문장은 수옥을 복용하며 신농을 가르쳤고, 불에 들어가 스스로 태울 수 있었다고 적는다. '누구는 무엇이다'라고 먼저 규정한 뒤 능력을 덧붙이는 형식이다. 이 형식은 앞에서 본 『진서』 열전의 첫 문장과 닮았다고 볼 수 있다.

권1에는 적송자가 산으로 간 일을 적는 구절도 있다. “至崑崙山,常入西王母石室,隨風雨上下。炎帝少女追之,亦得俱去。至高辛時,復為雨師。” 곤륜산(崑崙山)에 이르러 서왕모(西王母)의 석실에 들어갔고, 풍우를 따라 오르내렸다는 서술이다. 염제(炎帝)의 소녀가 뒤따라가 함께 떠났다고 적고, 고신(高辛) 때 다시 우사가 되었다고 맺는다. 서술은 장면을 묘사하지 않고 이동과 직책만 적는다.

팽조(彭祖)를 적는 구절도 같은 틀을 따른다. “彭祖者,殷時大夫也。姓錢,名鏗。帝顓頊之孫,陸終氏之中子。歷夏而至商末,號七百歲。” 신분을 먼저 적고 성과 이름, 계보를 차례로 붙인다. 전욱의 손자이자 육종씨의 가운데 아들이며 칠백 세라 불렸다는 서술이다. 신선 이야기가 족보의 문법으로 적혀 있다는 점이 이 구절의 특징이다.

권1 동영과 하늘의 직녀

권1에는 한나라 사람 동영(董永)의 이야기도 실려 있다. 시작 구절은 이렇다. “漢,董永,千乘人。少偏孤,與父居肆,力田畝,鹿車載自隨。” 이 대목은 동영이 어려서 부모 중 한쪽을 잃고 아버지와 살면서 밭을 갈고, 아버지를 녹거에 태워 데리고 다녔다고 적는다. 바로 뒤에 “父亡”이 이어지므로 아버지의 죽음은 그 다음 사건이다. 앞 구절을 ‘어려서 아버지를 잃었다’고 풀면 사건의 순서가 뒤바뀐다. 다만 서술이 시대와 이름, 출신지를 먼저 적는 순서는 앞 절에서 본 인물 소개와 같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주인과의 거래가 있다. “主曰:「必爾者,但令君婦為我織縑百疋。」於是永妻為主人家織,十日而畢。” 주인이 동영의 아내에게 비단 백 필을 짜게 했다는 서술이다. 아내는 열흘 만에 그 일을 다 마쳤다고 적힌다. 서술은 놀라움을 적지 않고 숫자와 기간만 남긴다.

아내의 정체는 본인의 말로 밝혀진다. “我,天之織女也。緣君至孝,天帝令我助君償債耳。” 자신이 하늘의 직녀(織女)이며, 동영의 지극한 효 때문에 천제가 빚을 갚도록 도우라 했다는 말이다. 이 구절은 신이한 사건에 이유를 붙인다. 이유의 근거는 인물의 품행이다. 효가 하늘의 조치를 부른다는 짜임이라고 읽을 수 있다.

서문의 마지막 구절은 이런 기록들을 읽는 법을 말한다. “幸將來好事之士,録其根體,有以遊心寓目而無尤焉。” 뒷날의 호사자가 근간을 기록하여 마음을 노닐고 눈을 붙여 허물이 없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한편 『진서』의 사론은 다른 각도에서 평가한다. “令升、安國有良史之才,而所著之書惜非正典。” 영승과 안국이 양사의 재주를 지녔으나 그 책이 정전이 아님을 아깝게 여긴다는 평이다. 고토뱅크의 사전 항목은 『수신기』를 위·진 시대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암시하는 작품으로 평가하고, 간보의 전이 『진서』 권82에 있다고 적는다.

근거 자료가 적는 『수신기』 20권본과 8권본의 전승 범위
항목20권본8권본
전해지는 상태중문 위키백과는 집본 20권 464편이 전한다고 적는다고토뱅크의 사전 항목들은 8권본도 전한다고만 적는다
수록 편수마이페디아는 현존 20권에 470편의 설화가 실렸다고 적는다근거 자료에 편수가 나오지 않는다
원래 30권과의 관계브리태니커는 원래 30권이라 기록되지만 지금 모습은 원래 모습이 아니라고 설명한다브리태니커는 20권본과 계통이 다르다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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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간보는 신이한 일을 적을 때도 기록의 출처를 먼저 세웠다. 『진서』 권82는 그를 국사를 맡은 저작랑으로 적고, 『진기』 20권에 대해 양사라는 평을 전한다. 「수신기 서」는 전승마다 들은 바가 엇갈린다고 인정하고, 앞선 기록을 이어받은 오류와 근세의 일을 채방한 허오를 나누어 책임을 말한다. 권1의 적송자와 팽조, 동영 이야기는 인물을 먼저 규정하고 행적과 이유를 붙이는 짧은 형식을 공유한다.

독자가 지금 읽는 20권은 명대의 간행을 거친 집본이다. 중문 위키백과는 원래 30권이었다고 적고, 브리태니커는 20권본과 8권본의 계통이 다르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수신기』를 읽을 때는 어떤 판본의 어느 권을 보고 있는지 먼저 확인하는 편이 안전하다. 2부와 3부에서 다룰 범위는 이 글에서 적지 않는다.